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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외무부대사 이장춘씨- 김대중의 죽음

modory 2009. 8. 21. 23:14

前외무부대사 李長春 특별기고: 전 대통령 金大中의 죽음

잃어버린 10년‘은 틀린 말이다. 계속 잃어버릴 세월이 안타깝다.
 근 한 달 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했던 전 대통령 金大中이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행적과 治政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엇갈린다. 그의 出生연도마저 네 가지로 달리 알려져 왔다. 차제에 한 가지라도 바로 잡아 둘 만하다. 1997년의 大選으로 가면서 그는 1923년에 태어났다고 직고했다.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난 이상 누구도 그의 삶을 加減(가감)하거나 왜곡할 수 없다. 지금은 그의 죽음을 애도할 때이다. 그러나 그의 장례와 묻힐 곳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시끄럽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者들이 그를 조용히 冥府(명부)로 보내지 않고 紛亂(분란)과 갈등을 조장하며 아까운 시간과 자원을 浪費할 조짐이다.
 한반도는 한 동안 葬事(장사)를 치르는 데 실없이 바쁠 것 같다. 불과 3개월 전에는 자살한 전 대통령 盧武鉉을 위해 세기적 國民葬을 거행했다. 그때 故人은 유서로 조촐한 가족장을 원했으나 生者들의 부질없는 고집 때문에 死者의 유언이 무시되었다. 이번에는 國民葬보다 ‘높은’ 國葬을 치른다고 하니 더 요란할 듯하다. 머지않아 한 번은 더 國葬을 치러야 할 판이다. 전 대통령 金泳三측이 國葬을 원할 것이다. 또한 머지않아 다른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의 장례가 불가피하다. 이번에는 평양에서 조문사절이 내려왔으니깐 불원간 서울에서도 조문단을 올려 보내야 할 판이다.
 
 남북간의 영악한 政治드라마로 잇속을 챙겨 온 북한은 葬事(장사)를 호재로 재미를 볼 것이 뻔하다. 이래저래 죽음을 다루는 문제가 李明博 정권의 심상찮은 의제가 될 모양이다.
 
 국가의 빈번한 葬禮(장례)는 實用主義에 어긋난다.
까닭 없는 國葬은 개인의 호화 결혼식보다 훨씬 나쁘다. 浪費를 억제 못하는 권력의 허영이다. 국가원수가 國事로 순직한 경우에만 國葬을 치르고 國民葬을 폐지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맞다. 한국처럼 두 개의 국가葬儀(장의)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나라가 없다. 영어에는 國民葬이란 말이 없다. 그런 말이 있다면 國民葬이 國葬보다도 높아야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the people or the nation)이 국가(state)보다도 상위의 개념이다. 예전에 허구한 날을 葬事로 또한 祭祀(제사)로 보낸 조상들의 후예답게 한국은 과연 帝王的(제왕적) 共和國이다. ‘問喪(문상)은 권력의 척도’라는 말이 염치를 모르고 횡행한다. 한국이 民主化를 完成했다는 새빨간 거짓을 더 돋보이게 한다. 선진세계로 가는 길이 멀다는 것을 모르고 자만하는 때문이다.
 
 金大中은 천수를 다한 셈이다. 盧武鉉처럼 60代 초의 나이에 타계한 것도 아니고 비참하게 자살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깐 애달프게 슬퍼하는 사람들이 적다. 비겁한 보수 언론까지 정치권력에 영합하느라고 아양을 떤다. 정상적으로는 이번의 死者가 전라도 고향 땅 하의도에 묻히는 게 바람직스럽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거의 그들의 고향 땅에 묻혀 있다. 겸허한 자세로 죽음을 맞은 死生觀의 소치로 본받을 점이다. 그것이 아름답다.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은 대게가 죽음에 오만하여 그렇게 못한다. 盧武鉉은- 그의 治政에 대한 논란과는 동떨어지게 - 火葬하여 경상도 봉하에 묻힐 만큼 겸손하게 삶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그 유산만은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김대중은 國葬의 예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을 위해 순직한 영령을 모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그가 묻히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는 대한민국을 사랑한 愛國者가 아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한국의 건국을 폄하한 반면 북한의 共産왕조 집단을 비호했다. 소위 民主化 투사로서 그가 남긴 족적보다는 그가 大統領으로서 국가에 끼친 累(누)가 너무나 크다.
 
 
그는 사실상 국고를 强奪(강탈)한 者이었다. 현금 4억5000만 弗을 훔쳐 북한의 金正日에게 몰래 건넸다. 대한민국의 법치를 무시했다.
 
 
그는 反逆者(반역자)이었다. 형법상의 與敵罪(여적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졸개들만 재판에 회부되어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북한은 그가 보낸 돈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했고 소위 강성대국을 유지하는데 썼다.
 
 그는 대한민국을 증오한 인물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소위 6·15선언의 노래를 부르며 聯邦制(연방제)로 한국의 소멸을 획책했던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은 刑事 피의자로 조사를 받던 者가 자살하면 國民葬을 치러주고 敵의 핵무장을 도운 反逆者가 病死하면 國葬을 베푸는 야비한 나라로 타락했다. 국가 스스로가 그 體統(체통)을 갉아먹고 국민의 심기를 괴롭히는 중병을 앓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은 틀린 말이다. 계속 잃어버릴 세월이 안타깝다.
 (끝)

-'조갑제닷컴'에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