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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보훈연금받는다는데....

modory 2011. 1. 11. 08:36

 

 ○박지원이 보훈연금을 받는다는데,,,,○
 박지원의 부친 골수 공산주의자도 국가유공자 되나?
박지원은 현재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내년에는 7십8만1천원의 
유족연금을 받는다. 또한 그는 국가로부터 모든 병 치료에 대해 
무료로 지원을 받는 등 약 17가지 형태의 지원을 받는다. 
이 혜택은 박지원의 자식 대까지 연장되는 한편, 심지어 박지원의 
자식은 직장 갖기 어려운 이때에 취업에 관한 혜택(5%가산점)까지 
받는다.
그러나 김영삼 시절 건국포장을 받은 박지원의 아버지 박종식은 
공산주의자였다. 단순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여순반란사건에 가담한, 
공산반란군이었다.
◇ 박지원의 부친 박종식(1910년생)은 전남 진도 사람이다. 
전남 목포 공립 상업학교(김대중 대통령이 다닌 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광주에서 대대적인 학생 시위 항쟁이 벌어져 수십명이 
피검되었다는(체포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최창호 등 동교 학생들과 
수차 회합하고 목포에 동월 (11월 같은달) 19일을 기해 동조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이재실이 ‘피 감금학생 즉시 탈환’ ‘총독부 폭압정치 절대 반대’ 
‘피압박 민족 해방 만세’ 등의 구호를 쓴 붉은 목면 대기(큰 깃발) 
3개와 붉은 색종이로 된 소기(적은 깃발) 약 120여 개를 만들어 배부하고
 정진규 등이 등사판으로 격문 약 1,500매를 인쇄하여 서로 나누어 
 가짐으로써 시위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19일 아침 이들은 정명여학교 앞에 집결, 일제히 소기를 흔들고 
격문을 살포하면서 “싸우자 2천만 동포여! 광주 학생을 탈환하라. 
우리는 정의를 위하여 싸운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 시위운동으로 그는 다른 주동학생 21명과 함께 피체되어(체포되어) 
1930년 3월 20일 광주 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동년 6월 21일 대구복심법원(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10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에, 1993년 김영삼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그러나 그는 45년까지 일본 통치 시절, 일본인들에 의해 고향인 
진도군 군내면과 고군면에서 목화 수매 책임자로 있었다.
◇ 1945년 해방 후 박종식은 남로당(공산당) 진도 지역 책임자가 되었고 
숙부 박종극(朴鍾克)은 고군면 인민위원회 부 위원장이 되었음.
◇ 박종식은 여순반란사건에 가담하여 반란군으로 있다가 반란군이 진압되자 
지리산에서 도망쳐 진도로 돌아와 숨어있다, 1948년 10월 23일 경찰에 수배되어 
도피 중 진도 경찰서 김기일 곽순배 형사 등에 의해 총격전 끝에 사살됨.
(1976년 2월 25일 진도군이 발행한 진도 군지(郡誌)에 기록되어 있으며
 곽순배 형사의 친척이 되는 곽우불 진도 번영회 회장 증언)
◇ 1950년 6.25 한국전쟁 때 진도군에 북한 인민군이 진주했으며,
 이때 박지원의 삼촌, 고모 등이 북한 인민군 편에 나서 면민들을 가혹하게 
 북한 의용군에 징용되도록 만들어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그러다가 9.28 수복 후 북한이 패전 인민군이 도망가자 박지원의 삼촌 고모도 
 인민군과 함께 도주하다가 주민들에게 붙잡혀 돌과 몽둥이로 맞아 죽음.
 (진도군 무공 수훈자 회장 최기남씨 증언)
◇ 이런 모든 사실을 숨기기 위해 호적등 관계 서류를 파기, 변조하고 
1992년 2월 20일자에 호적을 다시 만들어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발부 
취득한 것으로 되어 있음.
한편 ‘박지원에 대한 재미 한인교포의 증언’ 유인물 3페이지 5번째 
제목에는‘박지원 아버지(박종식)의 좌익(공산당)활동’이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으며 아래와 같은 스토리가 폭로되어 있다.
(가) 지방 유격대장으로 우리 경찰(한국 경찰)을 무수히 죽임.
(나) 지리산 피아골 함락 이후 목포 신안으로 피신, 마지막까지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름.
(다) 박종식은 DJ(김대중)와 목포상고 동문.
(라) 1993년 8.15 행사때 박종식은 김영삼대통령으로부터 건국포장을 받고
 애국자로 둔갑함.
(포장증. 제 1552호, 당시 총무처 장관 최창윤) 국가 보훈처는 지난 93년~94년에 
발행한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 11권 125페이지에 박종식 씨에게 건국 포장을
 주게 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해 밝혀 놓았다.
(마) 공산당과 빨치산 활동을 하며 무수한 시민들을 죽인 반역자가 갑자기 
어느날 애국지사로 둔갑, 건국포장이라는 국민훈장을 받자 애국자 가족들과 
단체들은 상당히 흥분했다. 
그래서 한국논단 96년 3월호에서는 “사살된 공비에게도 건국포장을 
수여하느냐?”라며 문민정부를 비판하는 특집기사가 발표됐다.
( 손충무 국제저널리스트의 글에서)
이러한 인물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는 일이 생긴 것이다. 
공산반란군으로 군경과 싸우다 대한민국 경찰에 사살당한 인물이 애국자가
 돼 훈장을 받고, 그의 자식(박지원)과 심지어 손자 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보훈혜택을 본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될 수 없는 일이다.
박지원은 친북인사로 자타가 인정하는 북한 인민공화국 후원자이다. 
그는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6일 ‘2011년에는 자중해달라’는 당부의 뜻을 
담아 ‘올해의 다물어야 할 입’으로 박지원을 선정하였다.
심지어 박지원은 “중국 시진핑 부주석이 지난해 5월 김대중 전 통령을 
만났을 때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평화 훼방꾼 노릇을 하는가’라고 말했다”고 
말했으나 곧 중국 외교부가 이를 공식 부인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박지원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보수층과 군 당국 등이 북한 
 소행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북한을 옹호, 국민들로부터 빨갱이라는 조롱과 
 질타를 받고 있다.
일제시대, 공산주의의 해악을 모를 때, 공산주의도 민족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하던 시절의 사상운동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공산반군과 합세하여 
인민재판을 벌이고 죽창을 휘둘러대던 자까지, 군경을 향해 총을 쏘며 살상을 
하던 자까지 용서를 넘어 심지어 박지원 아버지처럼 독립유공자가 되고 
손자 대까지 연금을 주어야 하느냐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연금은 우리의 세금으로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의 동의 없이는 
단 한 푼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박지원이 과연 보훈연금을 받아야 하느냐는 사실을 놓고, 이제 우리 국민들은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
그리하여 그 결론을 분명하게 맺어야만이 대한민국은 올바르게 서게 될 것이다.
정재학
(IPF국제언론인포럼 편집위원, 시인정신작가회 회장, 데일리안 편집위원, 
전남자유교조 고문, 자유지성300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