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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대마도 그리고 김대중

modory 2011. 8. 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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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우리땅 (1)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에 속한 섬.진도 남서쪽에 있는 하조도에서 
약 6.7㎞ 해상에 있다. 섬의 모양이 큰 말의 머리와 같아 대마도라 했다고 한다.
섬의 북서쪽에 있는 179m의 산을 제외하면, 대부분 100m 내외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은 북서쪽에 깊은 만이 있고, 곳곳에 소규모의 만과 갑이 연이어져 드나듦이 심하다. 
북쪽과 동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으며 
만입부에 약간의 갯벌이 있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나 비가 적다. 주민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주요농산물은 고구마·감자·유채·마늘 등이며, 보리·쌀·콩 
등도 약간 생산된다. 
연근해에서는 도미·멸치·병어가 주로 잡히며, 자연산 굴·미역 등의 
채취와 김·톳 등이 양식된다. 
취락은 북동쪽 만 안에 모여 있다. 진도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면적 1.69㎢, 해안선 길이 14.5㎞, 인구 185, 
가구 86(2003).
대마도는 우리땅(1) 
1. 『주서(周書』와『수서(隨書』대판만(大阪灣)에는 담로(擔魯)와 일치하는 
담로도(淡魯島)가 있었다. 
일본열도 내에 한국어 계통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A.D 18년에 공주(웅진:熊津)에 도읍한 비류 백제는 처음부터 백가가 되는 
많은 세력이 바다를 건너왔다.(初以百家濟海)."
『일본국가의 기원』규슈(九州)에는 7개의 담로(對馬, 壹岐, 伊都奴, 投馬, 邪馬臺)가 
있었다(井上光貞). 서기 100년경에 이미 규슈지역의 키 작은 원주왜인(原住倭人: 
고고학상의 키작은 남방계 단신인)을 정복하고 비류백제 왕실의 자제(子第)
『양서(梁書) 백제전(百濟傳)』가 담로주(擔魯主)로 통치하고 있었다.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 
이 때문에 담로가 많이 있었다.『일본서기(日本書紀)』의 신대성기(神代成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음신과 양신이 성교하여 부부가 된 이후 산월(産月)에 이르러 
이들 담로주(淡路州)를 모태(母胎)로 대일본을 낳았다(陰陽始, 合爲夫婦, 反至産時, 
先以淡路洲爲胞… 生日本). "(金聖昊, 恩師 韓國편)
이상의 내용은 백제인이 세운 담로가 일본 혼슈(本州)는 물론 규슈연안과 
대마, 일기도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단고기』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記)에 의하면, 
"먼 옛날 마한(馬韓) 지역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이 대마도·일기도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들 지역은 마한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이때 소잔명존은 아들 오십맹신을 데리고 신라국(규슈 내에 있는
 拷衾新羅: 고금신라)에 내려서 소시모리라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이 땅은 내가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진흙으로 배를 
만들어 동쪽으로 가 이즈모(出雲)의 파천상류에 있는 조상봉으로 갔다
(『일본서기』신대 상8단).
위의 신라국은『일본서기』중애천황 8년 9월조에 나오는 고금신라 및 
출운풍토기의 국인신화(國引神話)의 고금신라와 같은 곳으로, 규슈에는 도래인이 
세운 신라소국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소잔명존이 일본의 이즈모로 이주한 것은 옛날 왕검조선 때 
대마도·일기도와 규슈 등이 마한의 관경 속에 속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서술한 내용들은 대마도를 중심으로 한 일기도와 규슈지방이 
왕검조선 때부터 우리 민족이 이주하여 통치했다는 실증적 자료다.
 『일본서기』에 쓰여 있는 신(神)은 그 모두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지배인들을 
 칭한다는 것은 『일본서기』의 내용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두천왕 섬야노(陝野奴:스사노오)를 모신 신사(神祠)를 
소머리데라(牛頭寺: 우두사)라고 부른다.
2. 예로부터 규슈와 대마도는 곧 삼한(三韓)에서 나누어 다스린 땅으로 
본래 왜인이 사는 지역이 아니었으며, 임나(任那)가 또 나뉘어 삼가라가 되었는데, 
소위 가라란 그 지방에서 중심되는 마을을 일컫는다(좌호가라는 신라, 
인위가라는 고려, 계지가라는 백제이다: 
『한단고기』고구려편)(이병선 저 『임나국과대마도』, 문정찬 저『일본상고사』).

이제 김대중이 저지른 독도가 문제가 아니라 대마도를 논해야 한다. 독도는 이래서 말썽이다. 김대중이 저지른 매국적인 행위이다

 

1965년에 체결된 경계선은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을 전제로
그은 것이고
1998년 김대중이 서명한 경계선은
독도가 우리땅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그어진 선이다.
이런 기막힌 사실을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박정희>


1965. 6. 22.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으며,

이 협정 내용에 따르면(위 좌측지도 참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전제하에

체결되었음을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다.

 

일본은 미국에 로비를 하여 1965. 5. 17,

존슨 대통령이 방미중인 박정희를 만나

“독도를 일본과 공유하라, 공동등대를 설치하라”는 등의 압력을 넣었지만

 

박정희는 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2006 기밀문서에서 해제된 1965. 6. 15, 국무부문건 제364호에서 확인 됨)

 

미국이 힘으로 밀어 붙이려 했지만 박정희는 장관급 회담을 거절하겠다며

맞섰고, 미국대사는 ”박정희는

그 무엇 독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며

밀어 붙이기의 불가능성을 본국에 보고하여 결국 이를 포기하게 된다.



<김대중>

 

1998.11.28. 新한일어업협정에 서명했다.

이를 1999. 1. 6. 국회에서 토의도 하지 않고 여당(現민주당)의

치기로 에 통과시켰으며, 같은달 22.부터 발효되었다.

 

이 때 새로 그은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위 우측지 참조)

독도가 한일공동관리수역에 들어 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3천여척의 쌍끌이 어선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선박 및 어구류 제조업체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어민들은통곡을 했지만

김대중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어선들을 북한에 주자고 했다.

 

한국인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하여

못 부르게 하였으며, 국민이 독도를 방문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1999년 12월 kbs, sbs, mbc 등 방송3사가 합동으로

우리나라 땅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새 천년의 해를 촬영하려고

독도로 향했으나 해군 군함까지 출동시켜 이를 막았고

방송사들은 할 수 없이 울릉도에서 촬영한 사실이 있다


♬배경음악:Arve Tellefsen /크로스오버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