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한' 시리즈로 시작해, '거지왕 김춘삼' '제3부두 고슴도치' '시라소니'에서 특유의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를 화끈하게 보여주며 호쾌한
액션 배우로 이름을 알린 배우 이대근. 사람들은 '변강쇠'를 이대근의 대명사로 여겨 희화화하기 일쑤지만, 그는 김수용의 '화려한 외출',
유현목의 '장마', 정진우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이장호의 '어둠의 자식들' 등 문제작에 출연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 당대의
'대물'이었다. 여전히 거친 목소리의 이대근은 "변강쇠를 지금도 에로영화로 분류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무식하다"고 일갈했다. "극좌 세력이
좌지우지해온 한국 영화판"을 개탄하기도 했다.
![]() ―영화를 그렇게 이해하는 대중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 아닙니까. "나도향의 원작을 가지고 만들었으니까. 김동리 등 당시는 모두 한(恨)의 작품이야. 그런데 무식한 사람들이 뽕도 에로티시즘이라는 거지. 명작이라고는 읽어보지도 않은 거야. 반항하면 죽고, 저항하면 병신 되던 일제시대의 한을 담은 거예요 그게." ―'뽕'에서는 안협댁(이미숙 분)한테 헛물만 켜는 삼돌이로 열연합니다. 결국 단 한 번도 애정 신 없이 영화가 끝나더군요. 섭섭하셨겠습니다. "섭섭은 무슨. 애정 신 찍어봤자 배우들은 벽만 바라보지, 호강하는 건 풀샷으로 그 장면 찍는 카메라맨, 스태프들이라고(웃음). 그리고 여배우들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촬영했지만, 난 팬티 한 장 벗어본 적 없어요. 즐거운 게 다 뭐야. 여배우 히프가 내 앞에 턱 와 있고, 감독은 좀 더 실감 나게 연기하라, 예술로 승화시키라고 다그치고…. 그거, 그거, 괴롭지 않겠습니까?" ◇아름다운 배우, 정윤희 "특권이었지요. 정윤희가 으뜸이었어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찍을 때 산속 움막에서 촬영하는데, 그 움막 빌려준 노부부 살림살이가 숟가락 두 벌밖에 없어요. 14인치 TV를 사서 선물하더라고. 정말 착했지요. 여성의 아름다움은 모성 플러스, 아이처럼 맑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강수연은 까마득히 어린 후배였습니다. "'연산군'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나랑 강수연은 목욕통에 들어가 앉아 있고 우리 주위를 궁녀 36명이 맨몸으로 서 있는 장면. 강수연이 한창 자기가 제일 예쁘다고 우쭐할 때인데, 내 눈엔 엑스트라에 불과한 그 배우들이 강수연 못지않게 아름다워 보입디다. 미의 기준이 뭐예요? 세상에 자기와 똑같은 사람은 자기 하나고, 그래서 최고의 미녀일 수도 있고 최고의 추녀일 수도 있지요. 서로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을 하는 거 아니겠어요?" ―70~80년대 이대근에게 열광하는 여성이 많았습니다. "여자들 보기에 내가 좀 착하게 생겼대. 우악을 떨어도, '넌 내 말 한마디면 꼼짝을 못 한다' '손 들고 서 있어, 하면 서있을 것 같이 생겼다' 그래요(웃음). 사랑이 좀 있는 거처럼 보이나 봐. 드라마 '역풍' 찍을 때는 우체부가 타이탄 트럭으로 내 팬레터를 싣고 스튜디오로 들어왔어요." ―신성일씨와는 라이벌이었습니까. "최무룡, 신성일을 뛰어넘어 이대근의 독주 시대가 열렸지요. 그러고 한참 있다가 안성기 시대가 온 거고. 라이벌이 없으니까 1년에 100개씩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매니저가 그중 30편을 골라서 가져오면 내가 17~18편을 확정했어요.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살인적인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의상 입고 벗는 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요즘 스타들은 스타도 아니야. 스타라면 적어도 10년 세도는 해야지요. 난 30년 했다고. 이대근이 세금 제일 많이 내고 그다음에 이주일이 따라왔지요." ―스캔들도 꽤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남자가 아내 이외에 사랑을 느끼는 여자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요. 인간이니까. 하지만 내게도 손자 손녀가 있고, 상대도 육십은 족히 넘었을 테니 각자 추억으로 삼고 사는 거지요. 그때는 아프고 괴로웠지만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이에요."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정지하면 썩어요. 그게 사랑의 최대 약점이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는 날까지 노력하고 정지하지 않고 사랑해야 굴러가는 게 사랑이에요. 하늘에서 툭 떨어진 순간만 좋아라 하고 시련이 닥쳤다고 정지하면 사랑은 실패한다고.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이 위대한 거예요." ―이대근은 마초입니까. "나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내는 여자를 보호하고 책임질 능력이 있어야 하고, 여인은 그 남자를 받아주고 위로하고
아이처럼 보살펴야 아름답지."
![]() 이대근은 변강쇠보다는 '한국판 앤서니 퀸'이라는 수식에 더 어울리는 배우다.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정통 연극배우로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작품이 '노틀담의 꼽추'다. 미국 영화에서 꼽추 역을 맡은 앤서니 퀸 못지않은 연기였다고 호평을 받았다. 1963년 KBS 7기 탤런트 공채를 거쳐 MBC로 자리를 옮긴 건 순전히 '배가 고파서'였다. '수사반장' 첫 회의 마약 사범으로 등장하는 이가 이대근이다. 영화는 최무룡 감독의 '제3지대'로 데뷔했지만 신상옥이 제작한 '김두한'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영화만 300편 가까이 찍을 만큼 이대근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강렬했다. "TV 드라마는 영화를 위한 훈련용"이라고 할 만큼 영화를 최고의 예술로 자부했다. ―연극 '노틀담의 꼽추'를 초연했습니다. "연극으로서는 세계 초연이었어요. 명동 국립극장이 터져나갔지. 극단마다 서로들 날 데려가려고 했는데, 배가 고파서 '바보상자' 속으로 들어갔어요. 연극판에서 욕했지만 생업이 안 되는 걸 어떡해. MBC로 와서는 월화수목 매일 서로 다른 드라마에 나갔어요. 출연료가 쌀 두 가마니값이었으니 쏠쏠했지요." ―이대근을 최고의 액션 배우로 추억하는 영화 팬이 의외로 많더군요. "300편 영화 중 절반이 액션이야. 김두한, 김춘삼, 시라소니…. 한국의 '오야붕' 역할은 다 했지. 김두한이 한창 인기일 때 부산
촬영을 갔더니 깡패 30명이 둘러싸. '네가 싸움을 그렇게 잘해? 어디 붙어보자' 하대요. 감독이 득달같이 달려와 '이건 영화예요, 영화' 하고
달래서 겨우 돌려보냈지요." "우리 때 액션은 작품이었어요. 목숨을 건 진짜였지. 유리도 뚫고 지나가고, 낭떠러지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바다에도 뛰어들고. 주먹 신도 상대의 주먹이 날아오기 한참 전에 피하면 폼이 안 나요. 코앞을 스치기 직전에 날쌔게 피해서 한 방을 날려야 그림이 예쁘지. 그게 이대근의 원투 스트레이트야. 요즘처럼 마구잡이로 잔인한 거만 보여준다고 액션이 아니라고." ―강인한 체력, 남성성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으신 모양입니다. "자유당 시절 대한청년단 간부로 활동하실 만큼 악질 건달을 다스리는 공포의 건달이었죠(웃음). 내가 무녀독남인데, 어릴 때부터 태권도,
복싱, 레슬링, 기계체조를 섭렵했어요. 날아다녔지. 고등학교 때는 트럼펫을 배워서 군 복무할 때 국립묘지 초대 나팔수로 진혼곡도 많이
연주했어요. 제대한 뒤 아현동 시장에서 아버지의 야채 장사를 거들면서 시장 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고 배운 게 연기에도 큰 도움이
됐지요." "내가 이승만 정권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을 다 겪었는데, 그 사이 우리 영화계에도 좌파 우파가 생겨납디다. 좌파, 좋지요. 비판할 수 있어. 그런데 극좌는 안 돼요. 이게 선배고 뭐고가 없어. 저희끼리 똘똘 뭉쳐서 영화진흥기금 다 해먹고, 자기네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화도 못 하게 해요. 그 돈 가지고 전부 좌파 영화 만들었잖아요? 수익금으로 정치자금 만들고. '바다이야기' 총책이 누구예요? 예술가는 그렇게 살면 안 돼요. 타협하면 안 된다고. 열흘 보는 꽃이 없고 3대 가는 부자 없어요. 영화는 커피 팔듯 하는 산업이 아니에요. 정신 산업이라고." (김지미씨도 바로 이 인터뷰에서 이와같은 증언을 했다. 명계남, 문성근이 아닌지? ) ―60대에 오랜만에 주역을 맡은 '이대근, 이댁은'은 배우 이대근을 새롭게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흥행은 별로였지만 노년의 외로움과 가족의 소중함을 도장집 노인으로 분해 실감 나게 연기하셨지요. "내가 해온 작품 중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좋은 영화였죠. 한복을 입고 70대까지 연기해야 하니까 그땐 운동도 안 했어요. 근육이 보이면 안 되니까." ―그 작품으로 2007년 대종상 영화제 남우 주연상 후보에도 오릅니다. "내가 연기로는 누구와 붙어 져본 적이 없는데, 무슨 변고인지 주연상이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한테 갑디다.(웃음)" ―요즘 젊은 영화인들 보면서 어떤 생각 하십니까. "중이 승복을 입었다고 해서 다 중이 아니에요. 꽃미남이 다 뭐예요? 하룻밤을 자더라도 목숨을 걸고 싶은 남자여야 매력적이지. 안 그래요? 무엇보다 철학이 없어. 그 시대를 직시하면서도 멀리 보는 눈이 있어야 예술인 아닌가."
![]() ◇내 인생은 아름다웠다 ―원조 기러기 아빠입니다. 80년대 초 부인과 세 딸을 미국으로 보내셨지요. "77년엔가 미국에 갔더니 할리우드가 우리보다 100년을 앞서가고 있더라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아래로 펼쳐진 뉴욕을 내려다보며 내 딸들은 이런 문화를 보고 자랐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고생도 많이 하셨겠습니다. "처음 들어가서는 하도 막막해서 와이프랑 붙잡고 울었어요. 후회도 엄청 했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때는 늦었고." ―그래도 세 딸을 미국에서 훌륭하게 키우셨지요. 큰딸, 둘째 딸은 약학 박사로 FDA 고위 관료라고 하던데요. "큰딸이 미국식품의약국(FDA) 14급 공무원이에요. 15급이 장관이니까 차관쯤 되는 거죠. 딸들을 아내가 아주 엄하게 키웠어요. TV는 두드려야 나올 정도로 고물을 가져다놓고 그나마 하루에 1시간 이상 안 보여줬어요. 자명종 놓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하고, 늦잠 자면 학교를 아예 안 보내요. 미국에서도 회초리 들고 키웠어요. 하루 4시간 이상 못 자게 해서 박사 학위 따게 한 셈이지요(웃음)." ―사위들은 마음에 드십니까. "절대로 내 딸들을 배신하지 마라, 책임져라, 보호 관리하라 다짐을 받았지요. 그거 못 하면 사내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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