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4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의 명랑笑說<1981~1985>]
목적을 갖고… 치료도 거부하는… 정치판의
단기 기억 상실자들
먼 훗날
사가(史家)들은 21세기 초반의 한반도를 이렇게 서술할지 모르겠다. '당시 한반도는 3국 2체제였다. 북쪽에는 시장 경제에 흥미가 없는 김씨
왕조가, 남쪽에는 특이하게 같은 땅을 공유하는 두 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이 둘은 서로를 폄하하여 상대를 각기 '다카키 마사오의 나라'와 '도요다
다이주의 나라'로 불렀다. 둘은 물어뜯고 싸우는 데 이골이 났던 터라 일단 반대부터 한 뒤에 사안이 무엇인지 물었으며, 그 안이 예전 자신이
주장한 것일 경우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더욱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최근 신문 정치면을 보다가 든 생각이다. 정말이지 현실은
난해하다. 어지간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날짜 지운 신문을 펼쳐놓았을 때 순서대로 배열하는 게 불가능하다. 도대체 일의 순서와 발언이
일치하지 않으니 나 원 참….
압권은 한·미 FTA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다. 이명박 정권이 마무리 지었다. 다음 권력을 노리는 노무현 정권의 사람들이 그걸 폐기하겠다고 한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 세 문장이 순행하려면 '이명박 정권이 마무리 지었다' 뒤에 '다음 정권이 보강하겠다고 했다'가 따라와야 한다. 물론 폐기를
주장하는 이유는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보니 부록으로 독소 조항 10개가 달려 있다. 그런데 그 10개 중 9개는 노무현
정권에서 합의한 내용이고 현 정권에서 추가한 것은 달랑 하나뿐이다. '자동차 세이프가드(일정 물량 이상 수입이 늘어날 때 관세를 복원하는
조처)'조항인데 듣자 하니 관련 업계에서는 "상관없다. 발효나 서둘러 달라"고 한단다. 이해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반대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혹시 당사자들의 지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일까. 가르쳐 주기 싫은, 우리가 모르는 심오한 경제 논리가 있는 것일까.
결국 '들보
전쟁'이다. 내가 할 때는 잘 몰랐는데 남이 하니까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특이한 병증 환자들이 벌이는 질병성 전쟁이다. 그냥 '네'가 하니까
싫은 거다. 말의 앞뒤가 심하게 어그러지면서 골병드는 사람이 늘어난다.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면서 막상 공천 면접장에서는 두
가지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노무현 정신'이 뭐냐는 질문이 튀어나온다. 답변하는 입장에서는 뭐라고 해야 할까. 개그 프로그램인 코미디 빅 리그
식으로 말하자면 "이런 면~접 같은 경우"다. 현실은 난해하고 백성들은 난처하다. 난처한 이유는 대안이라고 여겨왔던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믹서에 넣고 갈아버렸기 때문이다.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를 예로 들었지만 이게 아니더라도 뭐든 찾아내서 반대했을 것이다. 정말 유권자들이
싫은 건 이런 반대를 위한 반대가 계속해서 꼬리를 물 것이라는 것, 그리고 목적의식적 단기 기억 상실자들이 치료를 거부하면서 계속 정치에
등장해서 우리를 현혹하고 괴롭히며 때로 사정하고 가끔 협박하는 세월이 또 반복되리라는 예감이다. 대체 이 전쟁은 언제 끝이 날까. 미래의 한국사
해당 페이지에는 이 전쟁의 마지막이 어떻게 기록될까.
앞일은 그렇다 치고 그럼 사가들은 20세기 중반 한반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할까. 소생이라면 이렇게 쓸 것 같다. '침략자 섬나라가 물러가자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남쪽은 가난을 싫어했고 북쪽은 부자를 싫어했다.
남쪽에서는 가난이 사라졌고 북쪽에서는 부자가 사라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