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세상●/★뉴스모자이크

총리와 운전 30년 - 동아일보에서

modory 2013. 2. 12. 09:41

[횡설수설/이동영]총리 후보자의 운전 경력

                

동아일보 2013-02-12 ‘보통 사람’을 자처한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2013년 2월28일 총리 지명 기자회견을 마친 뒤였다. 차관급인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이 의전 차량을 타라고 권유하자 “저도 30년 동안 운전했습니다”라며 임 실장을 옆자리에 태우고 부인 명의의 승용차를 손수 운전했다. 신문 방송의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에게 겸손하게 비치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30년 운전 경력’이면 검사로 임용되고도 9년이 지난 1983년경 처음 운전면허를 딴 것으로 보인다. 등록차량 수는 그가 면허를 따던 즈음에는 90만 대 수준이었다. 39세에 면허증을 손에 쥐었으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늦지만 한국에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린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다.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 맬컴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했다. 어떤 분야에서든 경지에 오르려면 1만 시간을 연습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 정도를 10년간 계속해야 하는 엄청난 양이다. 물론 시간만 때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 분야에서 자신의 결점을 찾아내 보완하는 연습량이 그 정도여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선행학습하고 고난도 기술을 배우는 운동부 학생이 수두룩해도 세계적인 석학이나 스포츠 스타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걸음마 떼자마자 골프채를 잡았다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저서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연습은 하루 20분이면 충분했다고 했다. 타고난 천재가 정확히 운동의 핵심을 꿰뚫으면 굳이 1만 시간까지 필요치 않은가 보다. ▷많은 반칙운전 중에서도 과속은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꼬리 물기나 차로위반 신호위반 등의 반칙운전도 위험하지만 사망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는 과속이 단연 앞선다. 경찰이 2008년부터 3년간 과속 교통사고를 분석해보니 가해자 10명 중 4명이 운전 경력 15년 이상의 베테랑이다. 경력만 믿고 ‘내가 잘 안다’며 실력을 과신하다 사고를 빚는 것이다. ▷정 후보자가 관용차량을 타지 않고 손수 운전하는 모습에서 많은 국민은 그의 말대로 ‘보통 사람’의 냄새를 느꼈을 법하다. 30년 운전을 하면서 딱지 한 장 떼지 않고 ‘착한 운전’을 했는지는 청문회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마이카 운전을 한 사람이 운전사를 채용한 사람보다 손해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총리 공부에도 ‘1만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는 법무부 장관은 몰라도 총리감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타고난 감각과 부지런함을 갖춘다면 꼭 장관이나 의원을 안 해봤더라도 명재상(名宰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승객의 안전은 운전사의 경력이 아니라 실력이 담보하는 것처럼.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