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박사가 확실히 규명한 북-특수군 600여명! 김대령박사의 역작 “역사로서의 5.18” 제2권 180-220쪽에는 광주작전에 투입한 북한 특수군이 최소한 600여명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증거들과 논리가 상세히 밝혀져 있다.
저자는 전두환 세력을 처벌하기 위해 검찰 및 군검찰이 공동으로 작성한 “5.18관련사건 수사결과 보고서”,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 “광주의 분노” 그리고 5.18세력이 유네스코에 보낸 80만 쪽에 실린 수많은 광주시민들의 증언, 언론보도들, 탈북자들의 증언들을 조직적으로 인용하여 매우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 600여명의 정예팀은 감히 육군 정규사단들 중에서도 정예부대로 분류되는 제20사단의 이동시각과 경로를 파악하고 매복하였다가 사단장 차를 포함, 지휘차량 14대를 빼앗고, 무전기를 빼앗아 아시아자동차로 갔다. 군용차 제조공장인 아시아 자동차에서 장갑차 4대와 300여대의 군용트럭을 탈취한 후 불과 4시간 만에 전군 18개 시군에 숨어있는 무기고를 탈취하여 시민들에 나누어주고 사격술을 교육했다.
위 책의 180-220쪽을 읽고도 600명 특수군 규모를 반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이들 600명은 부나비 같은 어린 학생들과 양아치 등의 하층계급을 동원하여 5월 21일 밤 계엄군을 광주시에서 몰아내고 전남도청을 확보했다, 이 순간을 광주 폭도들과 그 배후조종자들은 ‘해방“이라 부르며 축배를 틀었다.
그 다음날(22일) 오후 3시 08분, 광주시민들은 도청 앞 분수대에서 ”연고대생 600명을 환영하는 환영식을 거행하였고, 그 때 이들 연고대생들은 대부분 복면을 썼다. 이들 연고대생은 외지인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라 소개되었다. 그런데 이들 600여명은 어떻게 해서 광주시민들이 광주가 해방된 바로 그 다음 날 오후 3시에 그들을 위한 환영행사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으며, 누구로부터 받았는가? 증심사에 본부를 두고 여러 달전부터 광주혁명을 준비해온 비전향장기수 손성모와 같은 고첩들이 광주-전라도 출신의 빨치산들과 정예특수군 사이를 연결지은 것이다.
이 600명은, 양아치 구두닦이 석공, 철공, 목공 등 천대받던 오합지졸로 구성된 핵심폭동자 400여명을 가지고는 구성할 수도 없다. 이들 부나비들은 감히 극비로 이동 중에 있는 최정예 정규사단을 매복했다가 기습할 수는 없으며, 불과 4시간 만에 전남지역 전체에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털어 6,400여정의 총기를 탈취할 수 없다. 더구나 8톤트럭 분의 다이너마이트를 폭탄으로 조립하여 도청 지하실에 쌓아놓고 광주시를 날려버리겠다 협박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총상사망자들 중 70%가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으로 맞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북-특수군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한, 광주시민들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김대령 박사 저서 중 윗 부분을 읽고도 북괴군 개입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심미안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이 부분 자간을 통해 현장에 나타난 북괴군의 영상까지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먼저 읽고 탈북자들의 증언집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을 읽으면 그 실감이 증폭될 것이다.
이 600명의 존재와 이들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수행한 사실 그리고 이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며 복면을 한 사람으로 이들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갖는 광주 시민군들의 증언들이 매우 많이 있다. 동아일보 김영택 기자를 포함한 광주의 수많은 시민군 출신들이 600여명의 존재와 600명의 능력과 600여명이 보인 수상한 점들을 다같이 인정한 것이다. 이 600여명이 이룩한 신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유네스코에 가 있다. 2013.6.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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