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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線과 心像의 표현에 관하여(1) - 이중섭의 소를 중심으로

modory 2014. 5. 8. 11:24

 

 

흰소  1954년경作

 

한국 근대회화사에서 최고로 인상깊은 작품으로 선정된바 있는

이중섭의 흰소 입니다.

추사체와 같은 힘차고 강한 붓질로 그려진 선이 

범접하지 못할 위엄과 힘을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소의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중섭의 詩 <소의 말>입니다.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이 이 시를 보고 중섭과 대화한 내용입니다.

영진 - 형. 시도 써?

중섭 - 아니. 소가 말을 하길래 그냥 받아 적었지.

영진 - 소가 조선말을 잘하네.

중섭 - 응. 조선 소니까. 근데 요즘은 소들이 전쟁을 치러서 그런지 눈빛이 흐려서 마음이 안좋네.

전에는 눈빛이 참 맑았는데...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살았던 화가 李仲燮(1916~1956)의 생애는

제 생애 최고의 영화로 기억하는 <닥터 지바고>를 생각나게합니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한 예술가의 생을 얼마나 짓밟고 뒤틀어 놓는지를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예술가의 삶과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지요.

 

어렵고 배고픈 그 시절에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살았던 이중섭은

가난을 못이겨 일본으로 건너간 부인 南德(일본명 山本方子/야마모토 마사코)과 두 아들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제가 태어나던 해에 안타깝게도 4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맙니다.

 

 

 

이중섭의 그림들입니다.

 중학시절부터 소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했던 중섭은

하루 종일 들판에 나가 소를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의심받기도 했습니다.

 

말기로 가면서 그의 그림들은 소의 뼈대가 드러나면서

힘찬 선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소와 아이들

 제주 서귀포 시절의 그림인것 같습니다.

붓질에서 힘찬 필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림속의 소는 중섭 자신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고개숙인 소  통영피난시절 

 선들이 더 힘차고 분방하면서 거칠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 이 소는 중섭 자신이면서 곤경에 처한 민족의 모습이기도 할것입니다.

 

 

 

떠받으려는 소 1953년경

 

화가 박고석이 이중섭 최고의 걸작이라고 극찬한 작품입니다. 

나이프와 붓으로 그려진 흰물감의 면 위에 간결하고 힘차게 그려낸 검정색 선들은

마치 추사체에서 보이는 자유분방함과 힘, 괴이함에 그치지않고 잘되고 못되고를 따지지 않는다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의 경지를 보이면서

앞에 있는 상대를 향해 돌진하기 위해 뒷발로 밀고 앞발에 체중을 실은

힘찬 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추사의 글씨와 비교해 봅니다.

 

 

 

 많이 닮았지요?

 

 

 

 

 

떠받으려는 소 1953년경

이 그림은 어찌보면 루오를 닮은것 같기도 합니다.

 

 

흰소 1954

 

 

 

피흘리는 소

 

 

 

싸우는 소

 

  

 

 

소묘

 

 

소묘

 

 

소에 대한 경의

 

 

소와 남자

 

 

소와 여인

 

 

소와 비둘기와 게

 

 

 소와 아이

 

자화상

 

 사진

 

 

 

 나무들은 어떻게 그렸을까 풍경화들을 봅니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

 

 

부산 범일동 풍경 1953년경

나무들을 그린 선에서 눈을 씻고 봐도 기교가 전혀 안보입니다.

그야말로 천진무구한 선으로 간결하고 힘차게 그려낸 선들입니다.

 

 

 

 추사의 글씨 <단연죽로시옥>입니다.

단계벼루, 차끓이는 대나무화로, 시를 지을 수 있는 작은 집

이 세가지로 자족하겠다는 선비의 마음을 표현한 글씨입니다.

 

글씨의 묘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다.

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글씨입니다.

중섭의 나무와 닮지 않았나요?

 

남망산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1954

 

 

 

 덤비는 소 1956

 

중섭을 돌봐주던 의사에게 선물로 그려준 소입니다.

결국

1956년 제가  태어나기 두달쯤 전에 중섭은 일본으로 건너간 사랑하는 부인과 두아들을 그리워하면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치게 됩니다.

전쟁과 가난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걸작들이 탄생했을것을 생각하면 우리 한국미술계의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난때문에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종이나  담배를 포장한 은박지에 그려진 그의 그림들이나마

우리에게 큰  감동을 전해주는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중섭이 조카 이영진에게 전해준 말 한마디.

 

" 좋은 그림은 촌부(村婦)도 알아보는 그림이다."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엄청난  예술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촌부도 알아보는 나무를 만들 수 있을까요?

 

 

 

출처 : 분재도량 불이
글쓴이 : 삼테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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