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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중의 시인 -백석 이멜로 온 글

modory 2015. 3. 17. 09:45

조선의 풍객

 

시인중의 시

백석(白石)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엊그제 뉴스 아나운서 첫 멘트에 "온 세상 더러움을 버리려는 듯 눈이 내립니다." 고 하는 순간, 나의 뇌리를 번뜩 스치는 시가 있었다. 바로 백석의 불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의 한 구절을 아나운서가 멋있게 인용했기 때문이다.    

 

 

 

 

경남 일부를 제외하고 한반도 전역에 엄청나게 많은 눈이 그의 표현대로 푹푹 내렸다. 1번 그의 고향 정주 (한반도 최고의 명당이다)  2번 그의 사랑 '자야'를 처음 만났던 함흥이고, 3번 여간 눈이 내리지 않는 내가 사는 구미이다. 4번 그의 첫 번째 연인 ''의 고향  통영이다. 올해 백석 탄생 100주년이다. 마치 큰 눈을 뿌리며 "나를 잊지 말아 달라" 며 투정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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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  그의 시를 아니 읽을 수 없다. 그의 시 한줄의 값은 천억 (물론 그의 사랑 자야가 평가하는 값이지만) 보다 더 비싸다. 오늘 詩중의 詩로 알려진 백석 불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의 매력에 빠져 봅니다잘 알려진 내용들은 간략하고, 후반부에 자야의 혼은 빼앗은 시 해설에 치중해 볼까 합니다.

 

 

 

 

백석은 일본에 유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고, 국내로 돌아와 시 문학 활동즈음에 ''이란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그녀는 당시 이화여고에 다니는 신여성으로서 통영이 고향이다. '통영' 이란 시를 발표하며 그녀를 만나려 통영까지 갔지만 만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다그 사이 운명이랄까  백석의 친구 신현중과 결혼한다. 이때 백석은 "여우에게 홀린 것 같다."  고 하며 못내 아쉬워하고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 후 ~

 

 

 

   

백석은 함흥에 있는 영흥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여 근무하던 중 동료의 송별회를 하는데.. 요리집 함흥관에 마침 관기로 있던 기생 김진향이 그 송별회에 오게 된다. 이때 그는 첫눈에 반하여 그의 손을 꼭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당신은 내 마누라야 ~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기 전에 이별은 없다."고 홀딱 빠지고 만다그뒤 진향이가 지닌 이백의 시집의 '자야오가' 라는 시에서 딴 '자야'라는 애칭을 지어준다.

 

그러나  ~

 

부모는 그들의 사랑을 갈라 놓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시킨다

이를 알고 진향이는 그녀의 고향인 한성으로 오게 된다그리하자  백석도 학교를 그만두고 한성으로 온 진향에게 같이 만주로 떠나지고 종용하면서 지은 시가 바로 아래의 시다.

  

 

 

 

 

기생 진향이는 만주로 함께 떠나자는 백석의 간곡한 애원을 거절한다.

그리고 부터는 죽는 날(1999)까지, 백석의 사랑을 가슴에 안고 한많은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뒤에 대원각과 길상사 부분에서 다시 살펴 봅니다.

 

 

 

  

시에 등장하는 '출출이' '마가리'는 평안도 방언으로 뱁새와 오막살이 이다.

위 좌측은 참새로 하얀 목도리에 날개도 검고 흰 줄무늬가 있어서 깔끔하고 선명하지만우측의 뱁새는 목도리가 없고 붉은 머리다. 우수에 잠긴 듯한 검은 눈동자가 특징이다.   

 

참새보다 조금 작고 13센티쯤 된다. 참새와 같이 어울려 날아다니고 모이도 같이 먹고 논다. 새소리는 작고 가늘지만 맑고 경쾌하다. 아마 자야의 목소리가 맑고 귀여웠을 것이라 짐작한다.

  

 

 

 1968년 영화 ' 전쟁과 평화' 에서 나타샤로 열연한 오드리 햅번.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평화' 에 등장하는 여인이다. 만주어, 러시아어에 능통했던 백석과, 시를 사랑했던 자야는 그 소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훗날에 백석은 50년 전쟁 이후 북에 살고 있어서 영화를 보았는지 모르지만, 남쪽에 살았던 자야는 아마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백석은  만주의 행정(만주국)에 정착하면서 생활하다, 6.25 전쟁으로 백석은 북쪽에 자야는 남쪽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영영 생이별을 고하게 된다. 북한 정부에서 조만식의 비서로 잠시 있었다는 소식 외에는  근황을 알 수 없었다.

 

 

 

  

 

백석이 1962 년경 사망했다는 아련한 소식이 잊혀저갈 무렵, 위의 사진 한장이 공개된다. 1980 년대 중반, 백석이 70 대 중반무렵 북한에서 촬영한 가족사진이다. 그는 1995년까지 살다 죽은 것으로 최종 확인이 된다. 위 사진에서 백석 옆은 부인 이윤희(둘째 부인), 뒤는 둘째 아들(중축 씨)과 막내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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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40년대 문단의 '편안한 마돈나'로 불리던 최정희 소설가. 그의 남편과 둘째딸.

 

 

1934년경(추정)에 백석 23세 때 백석이 최정희에게 보낸 연서의 원본이 공개됐다. 아마도 백석은 '' '최정희' 두 여인에게 구애한 흔적이 확연하게 남아있다.

그렇다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염두에 두고 쓰여진 시이고 5 명 정도의 여성들에게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되나, 원본은 '자야'라는 여인이 가지고 있던 마농지종이 일 것으로 본다.  

 

 

 

 

  

그의 시들을 읽노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착각을 일으킬 만큼 순수한 동질감에 감동이 절로다. 과연  현대시 100년사에 '최고의 시집'으로 뽑히는데 이의를 제기할자 없다그의 시가 발표되자 그 동안  점점 알려지던 김소월을 한 수 아래 시인으로 추락시킬 만큼 강력했다.

 

그러하니, 보통 시인들이야 기가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그는 100년전 일상을 숨소리조차 느낄만큼 자세하고 셈세하게 표현하는 시인 중의 시인이었다. 아마도 남북통일이 되면 그의 일대기가 가장 먼저 극화로 다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백석 백기행과 자야 김영한(진향)은 그렇게 꽃다운 나이에 생이별을 해서, 40여년 세월을 흘려보내고 난 후 70대 중반에 사진으로나마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석은 북한의 통제된 사회에서 살다가(1995) 죽었기 때문에 아직 그가 남긴 말은 알수 없다.        


그러나 자야는 대원각 이라는 큰 요정을 경영하다가 죽기 일년 전에 법정스님에게 시주한다. 당시 1,000 억대 재산을 시주하면서 그가 한 말은 "그게 백석의 시 한 줄 만도 못하다." 고 했다.

 

  

 

 

  

 

 

  

  

그럼 여기서 김영한 여사가 평생 혼을 빼았겼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의 해설 글을 옮겨봅니다. 시는 쓰는 것 보다 읽고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감상해 보기로 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87년 해금된 백석(白石)의 작품이다.  해금 이후 그의 작품이 소개되면서 그는 한국사 최고의 시인 중의 한 명으로 평가 받는다. 이 시에서도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사랑'이다백석의 시에는 몇가지 눈에 띄는 점들이 있다.  우선 색깔이다. 흰눈, 흰당나귀, 소주로 대변되는 흰색갈이다. 이로써 시인은 이로서 시인은 다른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백의 순수한 사랑을 암시한다


하얗게 맑고 순수하나 쓰디쓴 사랑같은 소주를 남자는 마시고사랑하는 나타샤와 함께 흰색 당나귀를 타고뱁새 우는 흰색 눈내린 산골로 들어가는 남녀에게서 우리는 순백으로 가득한 흰색을 본다
 

두 남녀는 그 둘 외는 아무도 더 이상 다른 이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의 절대성이 보인다시인 중심의 세계관이다. 이 점은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한다. 시인은 가난하지만, 혼자서 소주나 마시는 서글픈 상황이지만, 그러나 세계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눈이 나린다”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니 그가 오지 않을 리가 없다”    
“이깐 세상은 더러워 내가 버리는 것이다”     
 

 

긍정적 역설이며 주도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가졌으니 눈이 내리고,
 
내가 사랑하니 그녀는 '반드시' 나에게고 오고, 세상마저도 내가 차버린다.  
비록 현실이 씁쓸하여 소주를 마시지만, 현실에 진 것이 아니다. 시인의 이런 주도적인 모습은  그러나 한국시에서 볼 수 없었던 멋진 글귀가 되었다, 특이한 '자아도취적 세계관'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시인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니 오늘 밤에는, 그 축복으로 하얀 눈이 내린다나타샤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시인을 사랑해서 그날밤 그에게로 꼭 온다.  그녀는 '아니 올 리 없다'. 눈은 계속 축복으로 푹푹 내린다. 흰 당나귀도 나타샤와 시인의 사랑을 축복하며 울어댄다


시인의 이 자아중심적 세계관은 남다르다. 이 시는 1930년 대 중반 '가난한' '점령당한' 조선의 시인이 쓴 시이다.
 
그러나 그 감정은 ‘자주적’이라 非시대적이다. 그렇게 자주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당대 시인의 모습은 수동적이며, 기죽은 이 시대의 여타 시들에 비하면 아주 특이한 점이다. 그 시절 백석은 고교 영어 교사였는데당시로서는 상대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인텔리'층이라서 이런 비시대적인 '긍정적' 마인드가 형성되었을 수 있다.
 

백석의 시에서 등장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흰눈'이나 '흰당나귀'가 아니라 '나타샤'이다시는 언어를 먹고 살며, 언어의 옷을 입고 그 존재를 드러낸다. 백석의 이 시가 사랑의 도피'를 꿈꾸는 낭만적 정서를 읊은 것이라면, 여기서 '나타샤'라는 여주인공 이름만큼 그 낭만성을 표상하는 단어는 없다. '흰눈' '여기에도' 흔하고 흰당나귀는 '느리다'. 그러나 나타샤만은 그 자체로 먼 북방의 아름다운 이국을 연상시키며, 그 美를 좇아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픈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나타샤’는 이 시를 읽는 모든이들에게 ‘동경의 혹은 이상의 여성상’을 꿈꾸게 하고 진부한 일상에서 헤어나고픈 방랑자적 인간 본성을 부추킨다.   
 

눈 내리는 밤, 소주를 마시면서 한 사내가 아름다운 여인 나타샤를 기다린다.
 
이 이국 이름의 여인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활달하고, 명랑하고 천진난만한 사랑스런 여인으로 다가온다. 나타샤를 알게 된 안드레이는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확인한다.

 

안드레이는 나타샤를 만남으로서 침체된 그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새로운 삶의 의지를 키운다. 나타샤는 구원의 여인상도 되겠다백석의 이 시편 속의 남자가 기다리는 '아름다운 나타샤'는 바로 톨스토이의 나타샤와 오버랩 되면서 '동경’을 일으키는 매우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일으킨다.    


백석은 원래 한국어를 애용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아시아 쪽의 고유명사나 서양의 시인이름을 제외하고는 서양 외래어 사용에 부정적이었는데 백석이 이 작품에서 사랑의 대상에 나타샤란 이름을 붙인 것은 '징후적'이다백석은 하얼빈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해방후에는 러시아 문학 번역도 하였다이후 백석이 나타샤란 이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질 수 있었겠다.   


밤에 내리는 하얀 눈과 흰 당나귀와 나타샤라는 북국여인의 이름은, 이 시에서 극도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백석이 남긴 이 명편(名篇)으로 인해 ‘나타샤’는 이상화의 ‘마돈나’와 함께 모든 마음이 가난한 남자들로 하여금 낭만적 사랑의 도피행을 꿈꾸게 하는 견고한 여성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남자들의 가슴 속에 각자 품는 이상형 여인에게 러시아 풍() 이름을 붙힘으로써 나타샤는 한국문학사()에서 낭만적 사랑의 화신(化身)이 되었다


이 시에서 만일 '나타샤'가 빠진다면, 혹은 '순이'같은 한국적 이름이 왔다면, 이 시의 감흥은 반이상 줄었을 것이다흰당나귀는 이미지상으로는 매우 아름다운 동물이다. 그는 습성적으로 공격성이 적으며, 고급의 윤기나는 말처럼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귀티가 나지도 않아서, 친밀한 느낌을 주는 '작은 little' 흰당나귀이다.
 
당나귀는 기껏해야 하복부, , 눈 둘레, 다리 안쪽만이 대체로 백색이라고 한다그러나 당나귀는 빨리 달리지 못한다. 그러니 '멀리 도망 가기엔' 적합한 동물이 아니다기껏해야 가까운 곳일 것이다. 이리하여 흰 당나귀는 이들 사랑의 도피행각의 불완전성을 암시한다. 두 남녀가 사랑해서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라야 매가리 산골이다.
 

만주벌판으로나 도피해야지 산골에 있다가는 그 도피는 곧 끝장나게 마련이다.
 
흰 당나귀는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잠이 좋아하던 터로서 백석, 윤동주 시인이 다 같이 좋아하였다고 한다사랑의 도피, 이 시의 주제는 '사랑의 도피'이다. 남자는 오늘 눈내리는 밤 흰당나귀를 타고  뱁새우는 산골로 둘이서만 들어가는 꿈을 꾼다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출출이(뱁새)만 외로이 우는 마가리(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려는 남자의 의지가 보인다
 

그의 뜻에 호응하여 '나타샤는 아니올리 없다'. 그녀는 더욱 적극적이다. 남자의 귀에 대고 자신들의 사랑이세상에 져서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물 세상을 자신들이 '더러워' '버리는' 적극적 행위라고 조곤히 속삭인다그때 우주는 그들의 사랑에 축복같은 눈을 내리고, 그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남자와 나타샤는 사랑을 하고,  화음한다. 그 때에는 눈처럼 새하얀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울음으로 이들의 순백의 사랑에 화창(和唱)한다시의 주제의 '낙천성Optimismus'이 눈에 띈다. 시인은 사랑하는 '그녀'가 오지 않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아름다운 나타샤, 나를 사랑하는 나타샤! 그녀는 그와의 도피에 마땅히 동참할 것이다. 나타샤는 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이와같은 '낙천성'도 한국시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김영랑은 기다림의 허무를 노래한다.
 
김영랑은 기다림의 허무를 노래한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영랑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이토록 ‘슬프고’ ‘허전하지만’,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눈물’이지만. 백석은 영랑의 기다림의 허망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름다운 나의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우격다짐적 낙관성을 고수하고 있다. 이 것 역시, 백석의 역사적 비시대성을 드러낸다암울했던 시기에도 낙천적일 수 있었던 백석만의 정서이다.     
  


글쓴이: 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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