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재발견◑/♣여행

바티칸 시티 천지창조 그림보기

modory 2015. 7. 10. 14:16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


 

바티칸 시국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


성당안에서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압도되어 그많은 사람들이 침묵 그자체...사진 쵤영금지, 잡담금지, 정말

최고감동의 순간이였다.학창시절 바티칸시트를 분명 왔었는데 긴가민가했었는데 이곳을 들리지는 못했었나보다.

처음 보는 감동. 



미켈란젤로

 


Sistine Chapel 성당 내부 전체가 그림으로 가득차 있다. 미켈란젤로 의 대작 <천지창조>

사진촬영금지와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곳들이 꽤 있었지만 여기는 특히나  절대 안되는 분위기~

정말 이곳만큼은  사진이 아닌 가슴으로, 머리속으로 꼼꼼히 감동을 느끼면서 보고 싶었다.


Sistine Chapel 시스티나 성당 가상체험 하는 사이트 바티칸에서 직접 제작해 감상할수 있도록 했다.


http://www.vatican.va/various/cappelle/sistina_vr/index.html

Sistine Chapel

www.vatican.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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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신 분이나 앞으로 가실 분들도 그림을 자세히 보시고싶은분들은 한번 꼭 보세요

넘 좋아요

360도 다 움직이면서 확대도 되고

자세히볼수 있어요


캡쳐한 사진 몇장 




<천지창조> 천정벽화

한참을 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아파 힘들던데 미켈란젤로는 몇년에 걸쳐 어떻게 그림을 그렸을까.. 몸이 상할수밖에 없었겠다.





< 최후의 심판 >




**Sistine Chapel 시스티나 성당

교황이 죽으면 전 세계의 언론들이 주목하는 곳도 바로 이 시스티나 성당인데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추기경 선거회의(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이기 때문.


콘클라베는 비밀투표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차례 투표가 끝날 때마다 투표용지를 모두 모아서 불에 태우고, 그 연기를 밖으로 내보낸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하얀 연기를 내보내고, 선출되지 않았을 경우는 검은 연기를 내보낸다. 

 


그런데 시스티나 성당이 유명해진 더 큰 이유는 바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 <최후의 심판>, 천장화 <천지창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완성한 것은 교황 율리우스 2세 때인 1512년이다.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1535년, 교황 파울루스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최후의 심판>을 주문한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완성하는 데는 3년이 걸렸다. 

반면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 

 

이때에는 미켈란젤로도 이미 늙어 있었다.


워낙 대작이기 때문에 이 <천지창조>에는 수많은 일화가 있다. 

 

천장 바로 밑에 받침대를 세워두고 미켈란젤로가 그곳에 앉아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기록에는 거의 하루 종일 받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어느 쪽이건 미켈란젤로에게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한 자세로 오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목과 등이 뻣뻣해지고, 

 

툭하면 눈과 얼굴로 떨어지는 물감도 짜증의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리기 시작하던 그해에, 라파엘로도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온화한 성격의 라파엘로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반면에 전부터 교황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완고한 미켈란젤로하고는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르네상스의 거장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년 4월 15 일 ~ 1519년 ), 미켈란젤로(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 라파엘로(1483년 4월 6일 ~ 1520 년 4월 6일)



 

교황이 다니는 복도





 


시스티나 성당에서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가는 길

성 베드로 성당 안에 들어서자 현기증이 날정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보기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




20년도 전에 보았던 미켈란젤로 의 < 피에타 >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 

이 작품을 다시  보면서 이곳에 왔었음을 기억했다.

 

이 웅장하고 거대한 내부의 예술작품들은 기억에 전혀 없다.

한번 보면 잊을수 없을거 같은 이런 위대한 작품도

기나긴 긴 시간속에 다 희미해져 있었다.






 


놀라고 또 놀라고 경외로운 내부장식들

베드로 묘지 위의 엄청난 발다키노

역대 교황의 시신들이 안치되어 있다.


판테온에서 가져온 청동으로 만든 케노피 스타일의 발다키노

실로 엄청난 위용의 청동작품


 


베르니니의 최후의 조각작품

교황 알렉산드르 7세 기념비



이런 조각작품들 볼때마다 어떻게 대리석을 깍아 그림처럼

실물처럼 느낌과 따뜻한 감성까지 담아서 조각할수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성당안에서 느꼈던 압도된 감정들을 다 토해내듯

광장에 들어서니 숨이 제대로 쉬어 지는듯

자유로웠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광장 중앙에 서있다.


 

지붕위의 성인들의 석상들





 

베르니니의 작품인 성 베드로( 산 피에트로 )광장

원형의 기둥숲위에 

베르니니 제자들이 조각한 142명의 성인들을 설치


조각가 베르니니에 의해 탄생한 예술품들

 

 





그 유명한 바티칸 시국을 지키는 스위스 용병


 


광장에서 본 베드로 성당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베드로 성당 돔


 



 





오벨리스크



양쪽에   주세페가 제작한 시계가 있고~




성 베드로 광장의 설계자는 < 잔 로렌초 베르니니>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설계하면서, 가톨릭교회가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머리로 두고, 

반원형의 회랑 두 개를 팔로 묘사함으로써 성 베드로 대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성 베드로 광장 양편에 각각 네 줄로 늘어선 토스카나식 기둥 284개와 

벽에서 돌출된 기둥 88개로 이루어진 베르니니의 회랑은 165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667년에 완공되었다. 

16m 높이의 원기둥꼴 대리석 기둥 위에 있는 140개의 성인상은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다.>



 


베드로 광장을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


 회랑의 기둥이 각각 4개씩 한줄로 서있는데

이 spot 에 딱 서서 보면 어느 기둥을 봐도 하나의 기둥만 있는것처럼 완벽하게 겹쳐 보인다.

신기 ^^




바로 여기 광장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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