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형 특파원이 다음과 같이 타전 했다.
연쇄 지진으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16만명 이상이 피난중인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에서는 각종 재난과 '벗'한 채 살아야 하는 일본 사회의 숨은 저력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개개인의 몸에 밴 질서의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였다.
기자는 규모 6.5의 첫 강진이 발생한 지 나흘째인 17일 구마모토 시 주오(中央)구 곳곳에서 이재민들 생활을 가까이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세계 최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고, 물 공급마저 끊겼기에 생활이 고달프기는 여느 나라의 이재민들과 매 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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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구마모토시 스나토리 초등학교 강당에 피난민들이 모여있는 모습.
구마모토현이 지정한 피난소인 스나토리(砂取) 초등학교 강당의 마룻바닥은 그나마 나았다. 이곳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구마모토 현청의 시멘트 바닥에 종이 박스 등을 깔고 새우잠을 자야 했다.
오전 4시 40분께 감지된 강력한 여진 때문에 일찍 잠에서 깬 현청 내 이재민들의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고, 새벽 추위 때문인지 곳곳에서 기침소리도 들렸다.
정식 피난소가 아닌 탓에 현청의 이재민들은 '자급자족'해야했다. 전날 한차례 도넛과 생수를 나눠주긴 했지만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에 집에 남아있는 비상식량을 가져오고, 인근 구마모토시 상하수도국에 몇시간 씩 줄을 서서 물을 배급받아야 했다.
오전 5시께 자급자족에 실패한 한 할아버지가 사람들이 누워 있는 현청 1층에서 큰 소리로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며 하소연을 하고 다녔다. 그러자 중년 여성 2명이 앞다퉈 그에게 다가가 가지고 있던 음식을 건넸고, 할아버지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고 몇번을 인사했다.
정식 피난소인 스나토리 초등학교에서는 때마침 아침 식사로 죽 배급이 이뤄지고 있었다. 가족단위로 4명까지는 한 그릇, 그 이상은 두그릇에 나눠 가족수에 따른 정량을 배급했다. 반찬도 없고 양도 부족해보였지만 더 달라고 다시 줄을 서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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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구마모토 시 스나토리 초등학교에서 죽배급을 하는 모습
죽 배급을 맡은 한 중년 여성은 "1차 배급이 끝난 뒤 남으면 더 달라는 사람에게 더 주는데, 1차 배급이 끝나기 전에 더 달라고 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전했다.
어머니와 아내, 다섯자녀 등 총 여덟 식구의 가장인 노하라(45) 씨는 두그릇에 담긴 죽을 먼저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었다.
노하라 씨의 어머니(69)는 "상황이 어려운데 이 정도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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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물공급이 끊긴 탓에 학부모들이 배급한 죽의 식기를 종이 타올로 닦는 것으로 설겆이를 대신하고 있다.
또 현청에서 5분 거리의 상하수도국 앞에는 물을 배급받으려는 사람들이 300m 넘게 줄 서 있었다.
길게는 두세시간씩 기다려야 했지만 다들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새치기하거나 정량보다 더 받아가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기에 따로 질서를 유지하는 공무원도 없었다.
인근 구마모토상업고등학교는 정식 피난소가 아니었지만 피난소에 못 들어간 이들을 위해 학교 공간을 제공했고, 이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600여 피난민들을 위해 여러가지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변기용으로 쓰기 위해 교내 풀장의 물을 떠오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3학년생 마쓰나가(18) 군은 "다들 힘들어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 둥지를 튼 이재민 요네자와(35) 씨는 "모두들 가진 것은 부족하지만 서로 먹을 것 등을 나눠가며 지낸다"고 전했다.
또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현청 바로 옆의 한 선술집은 영업을 하는 대신 계란 하나와 닭고기 장조림 몇점을 각각 은박지에 싸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16일 밤, 그곳을 지나가던 기자가 파는 것인 줄 알고 "얼마입니까"라고 묻자 선술집 사장은 손사레를 치며 "이것밖에 없지만 괜찮으시면 드시고 힘 내라"고 답했다.
이 글을 타전하는 특파원은 취재를 하면서 소위 말하자면 감동을 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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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 사람들의 전혀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인은 이중적이라고 말하게 된다.
일본 보수지 산케이(産經新聞)가 대지진 참사에도 질서를 지키는 일본을 한국이 격찬하고 있다는 칼럼을 낸바 있다.
일본 네티즌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사의 댓글을 통해 한국을 깎아 내리는데 혈안이다. 보이는 곳에서는 질서를 잘 지키면서도 안 보이는 곳에서는 증오에 찬 언사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일본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산케이는 이날 ‘서울에서 여보세요’ 칼럼에서 일본의 대지진 때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질서의식에 찬사를 보냈다고 적었다.
산케이는 1995년 일본 효고현 고베시와 한신 지역에서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취재한 한국 신문기자의 말부터 소개했다. 구호물자와 빵을 받으려고 어린아이가 아무런 불평도 없이 수 십 분간 조용히 줄을 선 모습을 보고 한국 기자는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 앞 다퉈 음식을 쟁탈하려고 소동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면서 감동했다는 것이다.
5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에도 한국기자가 놀라워했다. 도시락이 모자라 즉석 주먹밥 2개만 배분됐는데 이재민들이 ‘감사합니다’라면서 받아갔다. 이를 두고 한국 기자가 ‘한국이라면 항의 시위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감탄했다.
한국인들은 이런 일본인을 두고 ‘고난을 견디는 아름다운 모습’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진 일본의 시민 의식이 성숙돼 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일본 네티즌들은 칼럼을 돌려보며 한국을 조롱하고 폄하하고 있다. 일본 최대 커뮤니티 2CH에 오른 댓글을 보자.
“동방예의지국 한국은 일본에서 배울 게 없지 않나?”
“일본을 본받자고 입버릇처럼 수 십년간 말했지만 정작 배우지 않았다.”
“미개한 토인들이라 그래. 화재가 나면 도둑질이나 하겠지”
“인간이 되고 싶으면 조선인 따위로 태어나선 안 되지. 인간이 아니니까 조선인으로 태어났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배워야 한다.”
“수 십년간 한국을 지켜봤는데 진보가 없다. 무리야.”
“결국 한국은 일본을 못 따라올 거야. 이류국가”
이런 식이다.
일본 네티즌들의 악의적인 언동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두 분이 구마모토 지진 성금을 기부한 것을 두고도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악플을 퍼부었다.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거짓말했다고 속죄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