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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 가옥 의 굴뚝 -퍼온글

modory 2018. 11. 10. 04:39



한옥 전통에서 현대로(한옥의 구성요소)

굴뚝                               

우리의 옛집에 대한 추억 중에서 가장 또렷한 것이 바로 굴뚝이다. 어릴 적 고향마을은 저녁이면 굴뚝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임을 알았다. 하지만 땔감 용도의 목재 채집과 벌목이 금지된 후, 연탄에서 석유로 연료가 바뀌면서 굴뚝의 연기는 반길만한 것이 못되었다. 완전연소되어 내뿜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 태생부터가 친환경적이지 못해 굴뚝 옆을 지나기가 꺼림칙하게 된 것이다.

굴뚝은 연소에 필요한 공기를 받아들이고 아궁이에 바람이 들지 못하도록 막거나, 연소된 물질을 외부로 내보내는 수직적인 장치이다. 여염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뒤란이나 처마 위로 삐죽이 솟아 묵묵히 연기를 내뿜는 기능에 충실했지만 사대부가나 궁궐, 사찰에서는 장식성이 많이 부여되었다. 그중 경복궁의 아미산, 창덕궁의 낙선재, 창덕궁 대조전 후원, 경복궁 자경전의 굴뚝은 공예품에 가깝다. 특히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은 육각형의 몸체에 사군자, 십장생, 卍자, 봉황, 당초무늬 등으로 화려하다. 장수와 부귀 등 길상의 무늬와 악귀를 쫓는 상서로운 짐승들을 조형전(造形塼)으로 구워 배열하고 꼭대기에는 연가(煙家)까지 구성하였다. 가히 중국의 가장 아름다운 산인 아미산(峨眉山)의 이름을 본떠 만든 후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양반집들에서는 전돌이나 기와를 켜켜이 쌓은 굴뚝이 처마 위까지 솟았고 이를 통해 담장 밖에서도 위세를 알 수 있어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굴뚝의 높이는 바람의 흐름에 따른다. 산간지대에서는 지붕마루보다 높이 세우고, 평야지대에서는 처마와 같거나 조금 높이 세운다. 산이 높으면 굴뚝도 높아야 바람을 적게 타서 불이 잘 들기 때문이다. 아궁이의 고래를 놓는 것처럼 굴뚝의 위치와 높이를 정하는 것도 경험에서 배어난 기술이다.

관(管)을 가지지 않는 굴뚝으로는 강원도 산간지방의 겹집이 있다. 용마루 좌우 양끝에서 짚을 안으로 욱여넣어 낸 구멍으로 연기가 빠지도록 했는데, 까치가 드나들만한 구멍이라 하여 ‘까치구멍’이라고 한다. 의 모서리에 설치된 화로격인 코골 등에서 발생하는 연기를 빼주는 역할을 한다. 구들이 필요 없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방은 벽이나 지붕에 구멍을 뚫어 연기를 빼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기단으로 구멍을 내어 마당을 소독하는 역할까지 하는 굴뚝은 경상도를 포함한 남부지방의 주택과 서원 등에서 많이 보인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굴뚝들

공포를 단, 격이 높은 집을 본딴 굴뚝 형태로 길상과 벽사의 문양들로 가득하다. 문양전돌을 이용한 최고 솜씨의 집합체이다.

사용하지 않는 굴뚝

사용연료가 바뀌면서 쓰지 않게 된 굴뚝들은 담쟁이의 의지처일 뿐이다.

굴뚝의 재료로는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옹기, 통나무, 기와, 흙, 판자, 벽돌, 막돌 등이 사용되었다. 나무가 흔한 산간지방에서는 통나무 속을 뚫어서 세운 통구새라는 굴뚝을 세웠고, 통나무가 귀한 곳에서는 나무를 길이로 쪼개고 안쪽을 파낸 다음 다시 맞붙인 널구새에 널쪽을 네모로 붙이고 띠로 서너 곳을 고정시켜 사용했다.

집짓기의 마무리가 다 되어 집 주변을 단장하는 단계에 이르면 대개 주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조형물로서 굴뚝에 정성을 들인다. 설령 주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 굴뚝에 가지는 우리의 심성일 것이다.

김진흥 가옥의 굴뚝

조선후기 문신 윤용구의 은신처이자 순종 부마의 주택으로 알려진 성북구 장위동의 김진흥 가옥. 같은 집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소박한 굴뚝이 있는 반면, 그 권세를 대변하는 규모의 굴뚝도 있다.

옆의 바위처럼 무심하게 자리를 지키고 선 굴뚝. 기단높이만큼 허튼돌을 쌓고 암키와로 모양을 낸 후, 암키와 두 장과 수키와 한 장의 연가가 만들어졌다.

대산루의 온돌방 굴뚝 내부 상세

아궁이가 사람의 가슴 높이에 있다. 두 개의 굴뚝 또한 그 정도의 높이로 사람의 얼굴 형상이다.

양주 백수현 가옥의 여러 굴뚝들

아래에 허튼 돌쌓기로 기단을 만든 후 내부에는 토벽을, 외부에는 흙과 기와를 켜켜이 쌓았다. 아래에 굴뚝개자리가 있다.

백수현 가옥 안채 뒷방의 굴뚝. 방의 크기에 비해 굴뚝의 규모나 장식이 화려하다.
체감비가 두드러진 탑의 형상이다.
화방벽에 바짝 붙여 처마 밑에 쌓은 굴뚝은 문양은 달라도 같은 흙을 사용해 조화를 이룬다.
배수도랑과 기단에 잇대어 정갈하게 세워진 북촌댁의 굴뚝. 굴뚝에도 경북 안동 하회마을의 도도함이 드러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맹씨행단은 굴뚝마저 좌우대칭으로, 강직한 옛주인의 성품처럼 우직하다.
파주의 밥집 명가원. 주인이 직접 건축한 한옥에, 벽난로와 굴뚝도 이색적이다.
서울의 감고당은 여주에, 운당은 남양주에 옮겨놓았다. 검정벽돌을 쌓아올려 줄눈에 색깔 변화를 주고 연가를 올린 굴뚝이 서울내기답다.
여러 층의 화계 위, 괴석과 수목 사이에 우뚝 솟은 굴뚝이지만 담장 선과 주변 굴뚝으로 인해 부담스럽지 않다.
마치 굴뚝같지만 마루방의 환기를 위한 숨구멍이다.
굴뚝의 형태에 따라 하방 또한 굽은 목재를 사용하였다.
암키와 두 장을 겹쳐서 연도를 만들었다.
양진당 중문간채의 온돌방은 쪽마루 아래에 굴뚝이 위치한다.
굴뚝이 아궁이와 같은 방향이라 되돈고래로 추정된다. 굴뚝의 균형이 부자연스러운 건 부인할 수 없다.
소담한 치장벽으로 유명한 구례의 쌍산재는 굴뚝에도 표정이 있다. 솥을 걸고 옹기 연가에 조명설치까지, 굴뚝의 진화를 보여준다.
함양 개평마을 정씨 가옥.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굴뚝으로 기능이 의심스럽지만 조경물로서도 한몫한다.
점판암 지붕은 참으로 보기 힘들다. 처마 아래를 꽉 채운 장작과 후덕한 굴뚝은 주인의 성실함을 보여주고 밥집의 손맛까지 신뢰하게 만든다.
볕 좋은 뒷마당 장독대는 신성한 곳이다. 불을 다스리는 굴뚝은 조왕신의 보호 아래다.
정여창 가옥 아래채의 굴뚝. 안채마당 한구석에 자리해 고목과 공생한다.
소쇄원 제월당의 저녁, 운 좋게 만난 주인이 지피는 군불과 건네는 차 한 잔으로 여독이 달아난다.

널판을 이용하여 고정시킨 굴뚝

널판 네 개를 이용해 끈으로 두세 군데 묶어 고정시킨 굴뚝.

전주 교동다원, 아궁이형 난로의 연통. 방의 반은 온돌이고 반은 마루다.
굴뚝에 이를 쯤이면 연기의 열기가 어느 정도 식었겠지만, 이에 대비하여 열에 강한 옹기로 만들었다.
돌을 쌓고 회 미장을 한 굴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