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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케의원 말씀

modory 2005. 5. 20. 13:30


   

구케의원 말씀 “군대 가면 고문 당할게 뻔했다."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斷指’논란 관련 이광재 의원 19일 글 전문 용서를 구하기도 이해를 구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제 삶의 상처에 대해 밝힙니다. 1986년 저는 제 스스로 제 손가락을 버렸습니다.

제 나이 21살 때였습니다.

80년대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제 손가락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85년부터 86년까지 체포와 투옥,

고문과 분신이 줄을 이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시위를 주동할 예정이었고,

그 결과 당연히 감옥으로 갈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배들은 운동을 계속해주기를 권했습니다.

살아남은 자로서의 수치감, 1남 6녀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분노와

두려움 이런 것 들이 당시 저를 지배한 정서였습니다.

하지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전국 학생운동연합기관지 “백만학도”를 만들고 있던 저를 향한

수사망도 점점 더 좁 혀오고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 상황으로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어느 날 세미나가 끝난 후 너무 착하고 여린 동급 여학생이 성고문에 대한

공포 때문에 차 라리 동급생과 자고 싶다고 울부짖던 암울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망하나, 내가 죽나 한번 해보자”라는 것이 저의

심정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집시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만 받더라도

실형으로 간주돼 군대 에 갈수 없었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던 제게 군 입대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입영을 한다 해도 군에 정상적으로 복무할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군에 가는 즉시 보안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할 것이고, 고문을 못 이겨

동지의 이름을 불게 되면 동지들이 잡힐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고, 그 배신의 기억을

지니고는 영원히 정상 적인 인간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습니다.

때문에 모든 것을 제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는 결벽증이 있었던 듯 싶습니다.

열사의 분신과 고문소식들이 잇따르던 어느 날, 저는 부모님이 주신

제 손가락을 버렸고, 태 극기에 혈서를 썼습니다.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 그 피 묻은 태극기는 이화여대 다니던 한 선배에게

주었습니다. 저를 지켜봐 달라고.... 춘천 입영소에서 면제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루 후 집에 전화를 하니 예상대로 저를 잡으러 수사관들이 들이닥쳤고,

저는 도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 충청도에서 막노동을 하고, 부산에서

주물공장 등을 전전하다가 체포되어 남영동 대 공 분실에서 수십일 동안

조사를 받았고 감옥을 살았습니다.

출소 후 그 선배가 “태극기를 돌려줄까?” 하길래

“다 지난 일인데요. 뭐”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20년간 술잔을 받을 때나, 아이들이 제 손가락이 이상하다고 만져 보려고

할때나, 그리 고 어찌해서 손가락이 그리되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많은 아픔의 시간들을 가졌습 니다. 저의 단지 이야기는 제 아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제 상처에 관한 것입니다.

앞뒤의 문맥, 그리고 시대 상황을 다 버리고 이것을 군기피를 위한 단지라고

비난한다면 그 비난은 제가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제가 힘든 시기를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제 자신을 채찍질 하는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주위 몇 분들이 손가락 수술을 권했지만, 저는 그때의 상처와 다짐을 간직하고

살기 위해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 저의 행동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2005.5.19 국회의원 이광재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있던가? “군에 가더라도 보안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할 것이고, 고문을 못 이겨 동지의 이름이 라도 말하게 된다면

저는 영원히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1986년 제 나이 21살 때 저는 스스로 손가락을 버렸다”며

“80년대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제 손가락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는 이야기이다.

80년대 시대 상황 운운하는데 그 시대보다 더 비참하고 처참했던 시대가

일제 강점기이고 남북이 싸웠던 한국전쟁 때였다.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지난 20년간 술잔을 받을 때나, 아이들이 제 손가락이 이상하다고

만져 보려고 할 때나, 그리고 어찌해서 손가락이 그리되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많은 아픔을 겪었다”며 “그러나 지금도 스스로 제 손가락을

자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손가락을 잘라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니 사는데 지장 없는

손마디 하나 자르지 않고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전부

머저리들이라는 말인가?

한나라당에서는 “국민을 진노케 한 이 의원은 가면을 벗으라”며

강하게 비난했고 한나라 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19일 논평에서

“병풍으로 정권을 탈취하다시피 한 정권의 실세가 바로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멀쩡한 몸을 자해했다니 그 도덕적 이중성에 몸서리가 처질 정도”라며

“이 의원은 모든 것을 털어놓고 국민과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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