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모음♠/♧ 시 모음

어제 / 박정대

modory 2007. 4. 1. 12:04


 ★ 꽃비 속에 시 한편 ★

올 봄은 유난스럽다.흐드러지게 피었던 하얀 벚꽃 잎이 어제 몰아친 광풍에 다 떨어졌다. 아니래도 며칠 가지 않는 벚꽃인데 올해는 너무 허무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벚꽃의 모습이 밤새 사라져 슬펐다.박정대 시인의 '어제'란 시가 참 좋다.

◎ 어제 ◎

              박정대
어제는 네 편지가 오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적막한 우편함을 쳐다보다가 이내 내 삶이 쓸쓸해져서 
'복사꽃 비 오듯 흩날리는데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 취하라 
*劉伶도 죽으면 마실 수 없는 술이거니' 
李賀의 <將進酒>를 중얼거리다가 끝내 술을 마셨다
한때 아픈 몸이야 술기운으로 다스리겠지만
오래 아플 것 같은 마음에는 끝내 비가 내린다 
어제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다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 언덕 끝에 오르면 
가파른 생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들의 음악만이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푸른 음악의 한가운데로 별똥별들이 하얗게 떨어지고
메마른 섬 같은 가을도 함께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 낡은 기타를 매만질 때
너는 서러운 악보처럼 내 앞에서 망연히 펄럭이고 있었다 
어제는 너무 심심해
오래된 항아리 위에 화분을 올려놓으며
우리의 사랑도 이렇게 포개어져
오래도록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우젓 장수가 지나가든 말든 우리의 생이 마냥 게으르고 
평화로울 수 있는 일요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밤새도록 몇 편의 글을 썼다
추운 바람이 몇 번씩 창문을 두드리다 갔지만 너를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속 톱밥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톱밥이 불꽃이 되어 한 생애를 사르듯
우리의 生도 언젠가 별들이 가져가겠지만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
*유령(劉伶:221?~300?)은  중국 서진(西晉)때 문인으로 
‘죽림칠현(竹林七賢)’가운데 한 사람. 잠시 참군(參軍)을 
지낸 적도 있지만 일생을 거의 시와 술로 방랑했다 
 ◆박정대 시인◆ 
1965년 강원 정선 출생.
1990년 <문학사상> 으로 등단.
시집 "단편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등

^^*2007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