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 숙인 교육수장 김신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8월 심각한 논란을 불러온 내신 파동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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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 없는’ 평준화로 학력저하........ “5, 10년뒤가 더 걱정”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교육의 질적 하향 평준화를 가져오고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교육 혼란의 10년’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두 정부 모두 백년대계를 강조했지만 국민의 정부에선 7명, 참여정부에서는 5명의 교육부 장관을 바꿨고 장관마다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바람에 학생 학부모는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육학자들은 10년간의 교육정책은 정치적 입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일관성이 결여됐고, 특히 참여정부는 포퓰리즘에 영합해 수월성과 형평성이란 교육의 균형을 깨버렸다고 비판했다.》
DJ정부 ‘관 주도 벗어나 상향식 개혁’ 집착
非전문가 교육수장 기용-시민단체 입김 강화
盧정부선 靑-열린우리당 386들 영향력 행사
내신 등급제 강행 등 평등주의… 교육質 후퇴
○ 이상적 상향주의가 자초한 혼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분위기 속에서 이해찬 초대 교육부 장관은 교원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단축했다. 그러나 이는 교원의 사기 저하를 불러왔고 교육부가 교원수급계획을 잘못 세우는 바람에 되레 교원 부족 사태가 벌어져 퇴직 교원을 다시 임용해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교사, 교육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교육개혁추진단’을 만들어 관 주도의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의 교육개혁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교육개혁추진단은 1998년 7월 교육개혁을 통해 시민운동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새교육공동체위원회’로 출범했다.
시민단체 인사와 교사들의 입김이 확대된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의 분위기에 힘입어 그해 11월 ‘교원노동조합의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고 1999년 1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화됐다.
전교조 합법화로 힘의 축이 전교조로 쏠리면서 일선 교육현장에서 전교조가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는 것이 교육계의 평가다.
이 전 장관이 추진한 교원성과상여금제는 성향이 다른 교원단체 간의 갈등으로 교단의 분열만 부른 채 2001년에야 4등급 차등이라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흐지부지됐다.
침묵하는 대다수 교원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 채 ‘새 학교문화 창조운동’이나 제7차 교육과정 개정 등은 교원의 사기와 사회적 지위를 추락시켰다.
국민의 정부 임기 말에 자립형 사립고가 6개 지정됐지만 전교조의 반대에 밀려 확대되지는 못했다.
○ 평준화에 희생된 교육
국민의 정부 교육정책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수월성과 평등성, 자율성과 책무성의 끊임없는 이념 갈등에 흔들렸다면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평등성과 책무성에 경도된 일방통행이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고교 평준화 기조를 유지하되 학교 형태를 다양화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기조를 유지하되 대학의 자율성을 위해 대입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교육정책의 틀을 잡기 위해 2003년 7월 출범한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의 구성은 편향된 인선으로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윤덕홍 초대 교육부총리에 이어 전성은 당시 경남 거창 샛별중 교장을 교육혁신위원장으로 깜짝 발탁하는 등 대학의 서열 구조 타파, 기득권 폐지 등을 외치는 평등주의 인사들이 포진했다.
참여정부에선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의 386 운동권들이 교육부를 압박하면서 교육정책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교육부의 한 인사는 “386 운동권이 장관 보좌관으로 임명돼 ‘청와대 의중’이라며 사실상 장관을 조정하고 교육정책을 흔들었다”며 “전교조의 위세가 등등해 교육부를 제집 드나들듯 하는 바람에 간부들도 전교조 눈치를 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8학년도 입시에서 파문을 일으킨 수능 등급제를 당초 5등급으로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기도 했고, 교육 현장에서 준비가 안 됐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내신 등급제 도입을 강행했다.
학교 간, 지역 간 학력 차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전국 모든 학교의 실력이 같다고 전제한 내신 9등급제의 반영 비율을 놓고 정부와 대학의 갈등이 심했다.
열린우리당 등은 ‘서울대 폐지’ ‘학벌 타파’ 등을 주장했고, 서울대의 통합논술 도입 계획에 대해 최재성 의원은 “초동 진압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수월성 교육을 원하는 수요자의 요구를 ‘이기주의’ ‘학벌세습’ 등으로 치부해 외국어고를 비롯한 특목고 죽이기에 나섰지만 사교육비와 조기 유학생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과거 교육보급 시기의 평준화 논리를 지식정보화 시대에까지 적용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많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정책에 개입하기 시작한 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참여정부에서 본격적으로 교육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참여정부 첫해 7월 출범한 제3기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의 각 분과에 전교조와 교육시민단체 인사들이 대거 입성한 것을 시작으로 교육혁신위원회, 사학분쟁조정위원회, 교육현장안정화대책위원회, 대학자율화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마다 ‘코드’ 인사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포함됐다.
인천대 조전혁 교수는 “경험도 전문성도 없는 인사들이 이념 논쟁에만 빠져 획일적인 평준화 정책을 강행했다”면서 “이로 인한 교육의 하향 평준화는 5∼10년 뒤 한국의 교육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이해찬 세대… 죽음의 트라이앵글…대입정책 ‘혼란의 10년’▼
현장 무시한채 갈팡질팡, 학생 - 학부모들만 괴롭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대학 입시 정책은 학교 현장의 상황을 무시한 채 평준화 논리에 매몰돼 갈팡질팡했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의 정부 시절 대입 정책은 ‘학교교육 정상화’를 기치로 내건 문민정부의 5·31교육정책 기조를 기본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 대의명분은 결국 평등과 평준화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다양한 교육’ ‘수월성 교육’을 원하는 많은 학부모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무시험 대학 전형으로 바꾼다’는 내용의 2002학년도 대입 개선안을 강행했다.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는 교육당국의 선전은 일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대학들도 특기 적성 관련 특별전형을 마구 쏟아내 ‘미인대회 입상자’ 전형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입시의 관건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었다. 2002학년도 수능이 오히려 어렵게 출제되면서 대입 정책 혼란은 극에 달했다. 정부의 교육정책을 믿었던 1983년생 수험생들은 역대 최저 학력의 ‘이해찬 세대’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참여정부가 만든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 역시 지난해 최대 현안이 될 만큼 많은 부작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공교육 현장의 준비 상황을 무시하고 각 대학과의 입시 정책 조율 없이 무작정 내신 반영을 강화하다 보니 내신, 수능, 논술을 모두 잘해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수험생들을 내몰았다.
또 지나친 점수 경쟁을 막겠다며 도입한 수능 등급제는 오히려 1, 2점 차로 등급이 갈리고 지원 대학 수준이 달라지는 등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등급 이외의 입시 정보가 없어 진학지도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해 ‘로또 수능’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수능 물리Ⅱ 복수 정답 파문은 교육당국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대학 및 사회와 입시 자율권을 둘러싼 갈등을 빚어 왔다. 3불 정책(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금지)은 물론 수능·내신의 실질반영비율과 논술문제 유형 등을 정한 가이드라인을 강요했다.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대학들에는 행정·재정적 제재를 연계하기도 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