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세상●/★세상보기

별 게 다 민주화라네!!

modory 2008. 4. 24. 10:35

 

◐이것이 민주화 운동이었던가?◑
◈'사북사건' 그후 28년… 그때 그 사람들은
◈진실화해위 "국가는 고문당한 광부·주민에 공식사과를" 권고

광부·주민에 감금 폭행당한 '회사 편든' 노조간부 부인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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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 강원도 정선 탄광 노동자들의 집단 항쟁인 '사북사건'과 관련해 이틀 새 두 건의 의미 있는 발표가 있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당시 사건 수사 과정에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으로부터 고문과 폭행을 당한 광부와 주민들에게 국가가 공식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23일 권고했다.

하루 전인 22일 수원지방법원은 '그 광부와 주민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던 당시 탄광 노조지부장 이재기(1991년 사망)씨의 부인 김순이(72)씨가 시위를 주도한 이원갑(68)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씨가 김씨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진실화해위가 '피해자'로 규정한 광부와 주민들이 동시에 또 다른 집단 폭력의 가해자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 사북사건이 진정되기 하루 전인 1980년 4월23일 오후 사북탄광 광부와 주민들이 광산촌 주위를 몰려 다니고 있다. 조선일보 DB

◆"사북사건 광부·주민은 피해자"

사북사건은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광부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항의하며 경찰과 유혈 충돌을 빚은 사건이다. 광부들은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사북지서와 회사 사무실을 부수었으며, 이 폭력사태 와중에 경찰관 1명이 죽고 70여명이 다쳤다.

사태가 진정된 뒤 보안사·경찰·헌병대로 구성된 합동수사단은 광부와 주민 200여명을 연행해 조사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들이 자백을 강요하며 물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를 자행했다고 밝혔다. 또 임산부를 포함한 부녀자 40~50명을 조사하면서 옷을 벗긴 뒤 성적 가혹행위를 했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이 유산과 정신과 치료 등 후유증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가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진실화해위의 이 결정에 앞서 총리실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는 2005년 광부들의 항쟁을 이끌었던 이원갑(68)씨 등 2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었다.

▲ 광부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던 동원탄좌 노조지부장 이재기씨의 아내 김순이씨가 시위대에 잡혀 기둥에 묶여 있다. 조선일보 DB

법원, 시위주도자에 배상 판결

당시 광부와 주민들은 회사 편을 드는 노조 간부를 폭행했다. 그러나 노조지부장 이재기씨가 잠적하고 없자 그의 부인 김순이씨를 붙잡아 기둥에 묶은 뒤 집단 폭행했다. 김씨는 온몸이 발가벗겨진 채 몽둥이로 맞았다. 심지어 일부 주민은 김씨의 음부에 '난행(亂行)'을 저지르기도 했다.

시위를 주도했던 이원갑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뒤 일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김씨 폭행을 주도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나는 김씨가 묶여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 김씨를 (붙잡힌 당일) 풀어주고 병원으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씨 주장과 달리 이틀 이상 묶여 있으며 폭행당했고, 사북읍 부읍장에게 구출됐다. 법원은 "그 인터뷰 내용으로 인해 김씨가 고도의 불쾌감을 느끼고 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한 것이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또 다른 집단 폭력의 피해자 김순이씨의 고통을 인정한 것이다.

◆'민주화운동' 규정은 유보

진실화해위의 사북사건 조사는 이원갑씨가 2006년 11월 사북사태의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신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씨는 당시 신청서에서 "폭도로 매도되었던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신청하고자 함"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23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요구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렸지만 '민주화운동 인정' 요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진실화해위 김준곤 상임위원은 "'민주화운동' 여부는 (본 위원회의) 결정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나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참여했던 다른 위원들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진실화해위 이현희 위원은 "사북사태는 노동쟁의에 따른 폭력 사태일 뿐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진실화해위는 사북사건 과정에서 광부와 주민에 의한 김순이씨 집단 폭행문제도 조사했다. 김영택 전 진실화해위 위원은 "사건을 처음 조사했던 소위가 올린 자료에는 김순이씨 관련 내용이 전혀 없었다"며 "전체위원회에서 다시 김순이씨 폭행문제를 조사했다"고 말했다.

즉 김순이씨 폭행문제가 '사북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할지 여부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발표한 자료에서 '사북항쟁' 또는 '사북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 대신 '사북사건'이라는 가치 중립적 용어를 사용했다.

^^* 東雲2008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