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巖 이병철 선생 生家 둘러보기
자리한 곳 :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723 의령읍내에서 20여분 거리
湖巖 이병철 <1910 ~ 1987>
호암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는 다시 부엌과 부엌방, 방 2개, 대청으로, 사랑채는 방 2개와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에는 솟을대문 양쪽으로 방 2개가 배치되어 있다.
배후 전경. 대문채 사랑채 내부. 사랑채
생가 입구 < 월요일은 휴관 > 호암 생가는 삼성 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끈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 선생의 태어난 집이다. 그 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단다.
대 문 채
1851년 이병철 선생의 조부께서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으며 호암선생은 유년 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사 랑 채
안 채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이 물이 빨리 흘러들어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생가를 복원할 때 본채가 지어진 연대를 남기기 위해 대들보의 상량문을 옮겨 놓았다 한다. < 辛亥年(1851년) 癸巳月 辛卯日 乙未時 立柱上樑>
장 독 대
사 랑 채
바위의 모양이 마치 벼가마를 쌓아 놓은 것 같아 재물이 모이는 명당이 되기도 했단다.
바위가 마치 돈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이 보여 관광객들은 한 번씩 안아보며 재물복이 쏟아지기를 기원<?> 한단다.
호암 선생 조부는 3형제였고 좌우에 둘째, 세째 조부의 집도 있다.
별장으로 사용하는 집.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자의 기를 받아 보기 위해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단다.
부를 이룬 집안의 명당 터를 한 번 둘러보며 기분 전환하고 힘을 내어 어려움을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
追記
의령에 갈 기회가 생기면 읍내 재래시장을 찾아 이 곳의 명물 망개떡을 사 먹어보고 의령 소고기 국밥을 먹어 보기를 권해 봅니다.
5일장이 서는 날(3일, 8일) 찾아 가면 TV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재래시장 소고기국밥을 먹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병철 생가를 찾아 기를 받아 보고 귀로에 주남저수지를 둘러 철새를 구경하고 돌아오면 하루를 즐겁고 뜻있게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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