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난 수시로 발뒤꿈치 굳은살을 면도날로 베어낸다.
이렇게 안 하면 발바닥이 아프다.
함께 일하는 연출팀이라곤 달랑 연출과 조연출, 둘뿐이던 시절.
조연출은 잡부나 마찬가지였다.
녹화 날엔 운동화 끈을 바짝 매고 스튜디오 구석구석을 미친개 뛰듯 돌아다녔다.
녹화가 끝나면 땀이 흥건히 고여 운동화 바닥이 철벅거릴 정도였다.
조연출은 연기자에게도 만만한 존재였다. NG가 나면 무조건 조연출이
사인을 잘못 줘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요즘은 FM 라디오 주파수를 이용해 서로 교신하고 신호를 주지만
그때는 카메라에 헤드폰을 끼워 지시를 받았다.
한대 카메라가 세 대나 되다 보니 이걸 단번에 빼고 끼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야외촬영할 때도 조연출은 연기자 부르러 다니는 게 일이다.
연기자들 대부분이 버스 속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밤새도록 촬영현장과 버스 사이를 수도 없이 뛰어다닌다.
이 짓을 한 5년 하고 났더니 발바닥에 감각이 없어지면서 굳은살이 생겼다.
그렇게 연출로 데뷔하고 나서도 여정은 더욱 고달파졌다.
굳은살은 젊은 날 땀의 상징이고 인생의 옹이다.
볕 좋은 며칠 전, 마루에 앉아 한가롭게 면도날로 굳은살을 베어냈다.
살 한 점, 한 점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사라진다.
평생을 무엇을 그리 찾아 헤맸기에 이렇게 두텁게 옹이가 앉은 걸까.
지금은 바삐 돌아다닐 일도, 누가 숨 가쁘게 찾는 일도 없다.
굳은살이 점점 얇아지는 발을 어루만지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쨍하게 차갑고 높아 보였다. 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닐 것이다.
우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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