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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 ★ 저녁은 마당에서 먹는다

modory 2010. 10. 15. 14:21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사람은 저마다 즐겨 듣거나 읊조리는 노래나 시가 있다.
이런 음악이나 시에는 작가의 정신이나 깊은 철학에 끌려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이나 추억도 크게 작용한다.
나는 오규원 시인(1941~2007)의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란 
시를 좋아한다
저녁이란 끼니를 집안의 식당이나 방에서 먹으며 자라는 지금의 세대는 
마당에서 먹는다는 말 자체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나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어 보았고 그 정취를 잊을 수 없으니 ..
우선 시를 한번 소리내어 읽어보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숲 속에서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봄의 발자국처럼
        잔잔한 풀잎들
        마음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유년 시절 도시에 살던 나는 해마다 여름 방학이면 
큰 댁이 있는 시골에 가서 어른들께 문안을 드렸다. 어릴 때 기억으로 
큰 집은 정말 큰기와 집이었다. 마당이 넓었고 대청도 넓었다. 
그런데 저녁이면 으레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둥글고 큰 판을 서너 개 
놓고 논매기를 마친 일꾼들과 가족들이 삥 둘러 앉아 저녁을 먹었다.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삼촌은 시원한 대청마루에 자리를 잡았다. 
부엌근처에는 큰 가마 솥을 걸어놓고 칼국수를 끓였다. 큰어머니가 
진두 지휘를 하면 숙모, 큰 형수들이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만들었다. 
흙담장이나 텃밭 언덕을 타고 자라는 호박 덩굴에는 애호박이 지천으로 
달렸는데 싱싱한 애호박을 따 채 썰어 넣은 끓인 국수에 참기름과 
다진 마늘에 풋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갖은 양념을 한 숫갈 넣고 
마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넓은 마당 한쪽 구석에는 모깃불을 피워 연기를 하얗게 피어 올렸다.
풀잎 타는 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게 했고, 때로는 연기가 사람 앉은 쪽으로 
불면 모두 재치기나 기침을 하면서 매운 연기에 눈물을 닦기도 했다. 
여름 밤 검푸른 하늘 저끝에서는 별똥별이 길게 하늘을 가르며 떨어지기도 
했고 어떤 날은 별빛들이 우르르 쏟아지기도 했다. 
별빛과 함께 먹는 칼국수의 맛은 글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아득히 먼 이야기이며 이제 찾아 볼 수 없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