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은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골수간첩
2011년
5월 25일자 동아일보는 좌익이론의 대가 안병직(서울대) 교수의 양심성언 내용을 실었다.
“통혁당은
북한 지령으로 결성된 혁명조직 자생적 조직인 인혁당과 달리 통일혁명당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결성된 혁명조직이었다고 안 교수는 증언했다. 통혁당은
북한에 혁명기지를 두고 북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청맥’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하는 등 상당한 규모로 출발했다. 통혁당의
하부운동은 안 교수가 근무하던 서울대 상과대에서 가장 활발했다고 그는 밝혔다. 학생운동그룹 중에는 기독교학생운동을 하는 ‘경제복지회’가 있었는데
그 리더가 박성준(한명숙의 남편) 전 성공회대 겸임교수였다고 그는 전했다. 신영복 현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박성준을 지도했으며 통혁당의 서열 2위 김질락이 신영복을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상과대는 통혁당 학생운동의 ‘본마당’이 돼
버렸다고 안 교수는 밝혔다.”
신영복은 68년 당시 사형이 선고됐으나 이후 감형, 20년의 형기를 살다 1988년 석방됐고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경제학과
교수이자 성공회대 민주사회교육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신영복은 소주‘처음처럼’이라는 빨갱이 로고를 친필로 만들어 소주회사와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처럼’은 열우당의 로고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를 아는 애국자들은 처음처럼을 마시지 않는다. 2008년 10월초에는
경찰이 신영복 교수의 서각 ‘처음처럼’을 전시하고, 신교수의 글씨를 경찰시설의 현판으로 걸었다가 그가 국가보안법 전력의 소지자라는 것을 알고
떼어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