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대한민국은없다-세태만평

[스크랩] 사제 문화가 사라지는 대한민국

modory 2011. 7. 21. 13:48


師弟文化가 사라지는 대한민국

징11513.jpg

'망상에서 깨어나라'

노 다니엘 박사(월간중앙 객원편집위원)는 월간중앙에
“망상 대한민국이여, 헛꿈에서 깨어나라!”라는 글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드러냈다.
그의 지적에 의하면 우리사회는 거대한 망상(妄想)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망상들은 대단히 천박하다는 지적에 대하여 부끄러웠고,
콕콕 집어내는 예리함에 연방 가슴을 쓸어내야만 했다.
그의 지적대로 우리는 외형적이고 정량적인 면에서는 놀랄만한 성장을 
이룩하였을지 몰라도 이에 걸맞은 글로벌 수준의 도덕성과 
세계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했다.
‘나’의 가치나 중요성에 대해서는 집요하리만큼 집착하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시하고 있다.
징htm_2007060506005030003010-001.jpg

‘흑인’을 ‘깜둥이’로 대하는 오만함,
‘베트남 처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대명천지에 걸어놓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하니 부끄럽다.
그야말로 천민자본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천박해져 가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아시아의 불량아’로 많은 나라의 빈축을 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과 가치관의 부재에서 온 것일 것이다.
이는 우리 교육의 현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징321887_242756_4830.jpg
첫째, 가정교육의 철학적 빈곤이 문제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나라의 가정교육에는 철학을 담아내지 못한 채 
지나치게 철저한 개인중심의 '자기중심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극히 폐쇄적이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감각을 익히기 보다는
자신의 우월성을 강요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상류층의 자녀들은 귀하게 자라나서 어른이 없는 사회에서 활개를 치고 있으며, 
빈곤층의 자녀는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곧 바로 우리 모두를 안하무인의 건방진 
인간들로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미워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고 한다.
‘밖에 나가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고.
나-3P2734_2011_0220_1801.jpg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집밖에 나가서는 절대로 남에게 지지마라’고 가르친다.
자기 아이가 밖에 나가서 맞고 돌아오면
문제의 실상을 차근차근 검토하여 적격한 지도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바보 취급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체적으로 이기는 법까지 안내(?)한다.
이는 비단 어린 시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자식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 사고가 항상 잠재되어 있다.
얼마 전 재벌그룹 총수의 폭력 사건을 들여다보면
이와 같은 심리가 가득히 담겨 있다.
 
이런 가정교육은 우리를 더욱 오만하게 만들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젠 가정교육의 패러다임을 ‘자기중심’에서 
‘더불어 함께하는’ 세계시민적 관점으로 바꿔야 한다.
징321887_242755_4728.jpg
둘째는 원칙과 상식을 무시하는 파라노이아
(Paranoia : 무서운 편집광증으로 정신 나간 모습)에 매몰되어 있다. 
조금만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길거리로 
달려 나가고 있다. ‘떼’를 쓰면 모든 것이 통하는 사회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의 잠재의식에는 ‘안 되는 것’이 없고 ‘못 하는 것’ 없다.
구성원이 함께 하여 만든 제도나 원칙도 자기 자신에 맞지 않으면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제멋대로 하고 있다.
철저하게 자기만의 논리에 빠져 있다. 그래서 곧잘 소위 
‘뚜껑이 열린다’고 화를 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징2011062110112110424_101930_0.jpg
학교는 어떤 곳인가?
우리 모두 함께 하는 공동의 사회적 규범을
 습득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지도하다 보면
한참 지난 뒤에는 그 잘못의 본질은 어디로 가버리고
지도과정에서 얽힌 감정을 들어 소란을 피우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항상 피해자는 학교로 귀착되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또한 학교 교육의 주체들을 생산과 소비의 이분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수요자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것은 분명 찬성할 일이나 그 속에는 
수요자가 싫어하는 교육활동은 가급적 기피하는 것도 포함된 것 같다.
아이들은 미성숙자로 부단히 일깨우고 가르쳐야 하고
잘못에 대해서는 그에 따른 책임을 갖게 해야 한다.
징75753s.jpg
셋째, 우리 사회에는 ‘못 말리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 극단적 양상으로는 ‘짝퉁’이 판을 치고 ‘자존심’이 판을 친다.
얼마 전 가짜 학위로 포장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어떤 과오나 실수에 대해 진정으로 인정하고 반성하기보다는
‘상해 버린 자존심’을 더 걱정하는 우리사회가 문제다.
철저한 가정교육(?)으로 지기(패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우리 아이들은 자존심 또한 너무 강하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괘변으로 포장하는
사회의 흐름에 그대로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 현장에 난무하는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 교육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징14193080s.jpg
 
노 다니엘 박사의 ‘망상 대한민국이여, 헛꿈에서 깨어나라!’
라는 글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우리 교육의 개선 방향을 직설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과감하게 개선하여야 한다. 그래서 세계적 수준의 
상식과 도덕을 갖춘 인간으로 기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징8996129925_1.jpg
 
오바마의 고민을 우리나라도...
 
교육제도와 철학에서 한국만큼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라도 드물다.
광복과 함께 미 군정이 들어와 미국식 교육정책을 이식(移植)했고, 
1952년부터 1961년까지 활동한 미국교육사절단은 
한국 공교육의 틀을 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절단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을 한 많은 학생과 교육자는
문교부(교육과학부) 장관, 교육관료, 대학교수가 돼 한국 교육을 이끌었다.
지금도 한국 교육계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미국과 연관이 깊다.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해외 교육학 박사 1465명 중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은 76%(1117명)로 여타 분야 평균치 57%에 비해 눈에 띄게 높다.
서울대 교육학과는 교수 22명 중 20명이 미국 박사다.
미국에서 신종 학습이론이 나오면 이들을 통해 곧바로 
한국에 소개되고 실험된다.
징20100912171015331.jpg
이런 두 나라가 흥미롭게도 일선 학교현장 모습은 완전히 딴판이다.
전체 초·중·고교생의 90%, 4900만명이 다니는 미국의 공립학교 
시스템은 모든 선거에서 늘 1순위 현안일 만큼 국가적 골칫거리다.
반면 한국 학교는 그런 미국에 부러움의 대상이 돼 있다.
미국 학생들의 학력은 수십년간 OECD 하위권을 맴돌고 있고
학교는 제멋대로인 학생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폭력이나 절도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학교는 전체의 15%에 불과하며,
고교생의 7.8%가 무기를 지닌 다른 학생들로부터 위협을 받거나 
다친 경험을 갖고 있다.
금속탐지기로 등교학생을 검사하는 학교가 20개 중 1개꼴이고
5개 중 1개는 마약 소지 불시조사를 벌인다.
미국 학교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20세기 초 불기 시작한 진보주의 교육 바람이 있다.
1919년 진보주의교육협회(PEA)를 결성한 교사와 교육학자들은
교사는 학생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촉진제 구실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충격으로 잠시 지식교육이 강조됐던
1960년대를 뺀 지난 세기 대부분 미국 교육은 진보주의자들이 끌어왔다.
그 결과 교사는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커리큘럼만 진행하면 그만인 
기능인으로 내려앉았다. 아이들에 대한 끈끈한 애정은 고사하고 
천방지축 나대는 아이들을 꾸짖을 힘도 의욕도 잃은 지 오래다.
미국 신임교사의 절반은 5년 안에 교직을 버리고 떠난다.
징%C3%E2~3.JPG
미국 교육사조(思潮)의 영향을 실시간으로 받는 한국 학교가
미국처럼 망가지지 않고 버텨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만의 독특한 '사제(師弟)문화'가 그중 
한몫을 했음은 분명하다. 학생과 학부모는 스승을 존경하면서 어려워하고
스승은 제자를 아끼며 엄히 이끄는 수백년 문화가 우리 학교를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그 버팀목이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다.
몇몇 좌파 교육감들이 "학생이 무슨 짓을 해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말라"는
미국식 진보 깃발을 들고 나오면서부터다.
교실의 질서와 평온은 급속히 깨져나가고 교단에는 무력감이 확산돼
"문제학생을 봐도 못 본 척한다"는 교사가 97%에 이르고 있다.
징15091143380_60200040.jpg
1841년 미국에 공립 초등학교를 처음 세운 호레이스 만은
"공립학교가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하게 하라.
형사법이 규정하는 범죄의 90%가 사라질 것이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1998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공립학교에 근무하는 
경찰의 권총 소지를 허용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 다잡지 않으면 우리도 머지않아 
미국이 걸어온 그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사고뭉치, 거지발싸개 같은 싸가지 없는 쓰레게 좀비들이나 아마추어 좌빨,
거지 근성의 깽이와 같은 부류인 진보교육감을 타도해야만
사제(師弟)문화'가 살아나고 대한민국 교육이 되살아날 수 있다.
징32043945_1.jpg
-받은 글 입니다. -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