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4 북한인권기록소 설립에 기여한 박광작 교수 인터뷰
2012.08.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안보정책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한 박광작 교수는 서독에서는 위헌 판결 단체는
출판·집회 등 기본권 뺏고 위헌 정당이 이름 바꿔도 끝까지 추적해
해체시켰다고 했다.
동방정책 편 브란트 총리 동독엔 웃으며 대했지만 서독 공산주의자 다 솎아내
"서독, 자유민주주의 해친 세력 뿌리 뽑아 그 덕분에 통독 후 이념적 혼돈
없었다" 고 했다. 인터뷰 내용 - 이혜운 기자
"독일이 왜 통일된 후 이념적인 혼돈이 없는 줄 아십니까?
첫째로 서독 시절 '위헌(違憲) 단체'를 모두 해산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통독 후 지금까지도 '위헌 단체'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해치는 단체들은 법적으로
뿌리를 뽑아 버립니다."
13일 박광작(69)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2012 안보정책 세미나, 반국가단체·
이적단체,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를 앞두고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한·독경상학회 고문으로 있다.
1990년대부터 독일의 슈타지(비밀경찰) 피해 사례가 기록된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와 같은 시설 도입을 주장해 북한인권기록소 설립에 기여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 일문일답.
―독일은 서독 시절 '위헌 단체'를 어떻게 해체했나?
"독일에서는 위헌 단체와 정당이 서로 다른 제재를 받는다. 법적으로는
정당이 먼저 제재를 받았다. 1951년 서독 정부는 '사회주의 제국당'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서독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한 후 연방헌법재판소에 정당
활동의 금지와 해체 신청을 제기했다.
이런 위헌 정당은 이름을 바꿔가며 살아남았지만, 서독 정부는 계속해서 위헌
결정을 내리며 추적했다.
결국 1956년 좌파 정당의 후신인 '독일공산당'이 해체됐다.
위헌 단체는 1964년 '단체규제법'을 통해 활동을 금지하고 조직을 해체했다.
서독 정부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파악한 공산주의자 영향하에 있는
6만명 이상의 회원으로 구성된 단체는 50개였고, 이들은 모두 해체됐다."
―서독 정부는 이 단체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체했나?
"서독의 기본법에는 '그 목적과 활동이 형법에 반하거나 헌법적 질서 또는
인종 간 이해 사상에 반하는 단체는 금지된다'고 돼 있다. 위헌으로 판결된
단체에 대해선 '기본권 상실 조항'이 마련돼 있다. 기본권에는 의사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교수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서신·우편
및 전신의 비밀, 재산권, 망명자 보호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우리나라처럼
이적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가 성명서를 내는 행위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심지어 서독에서는 내란죄, 간첩죄 등을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된다.
이런 단체들은 딱 한 가지 법이 아닌 헌법, 형법, 단체법 등 여러 가지 법을
통해 해체된다."
―독일은 통일 이후 '구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좌파당'을 존속시켰다.
"통일 후 20년이 지났지만 좌파당은 지금도 기민당, 사민당 등과 달리
정부 기관의 감시 및 사찰을 받는다. 이건 합법적이다.
지난 2010년 연방행정법원은 좌파당 총선 대책본부장이던 부도 라메로에 대해
감시·사찰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합법적이며 필요한 조치라고 판결했다.
좌파당 소속 의원들이 국가의 존립에 반하는 발언을 하면 면책권과 관계없이
바로 처벌을 받는다."
―서독 내에서는 집회에서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고 국가 원수를 모독하는 일이
가능했나?
"불가능하다. 어떤 단체가 반국가적인, 위헌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하거나
행사를 할 경우 행사는 중단되고, 주최자는 경찰 조사를 받는다. 그리고 위헌
소지가 입증되면 그 단체는 해산된다.
단체의 재산권도 몰수돼 예산도 모두 빼앗긴다. 서독은 사상적으로 불순하면
교사뿐 아니라 우체부, 철도공무원 등 공무원 자체가 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72년 하이너 재미쉬 사건이다. 서독 정부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재미쉬라는 청년의 연수원 입소를 거절했다.
그가 대학 시절 '붉은 세포 법률'이라는 공산주의 학습단체에 40회 참여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반공정책이 아닌 독일의 동방정책(동독 정부 상호 협력을 시도한 정책)이
통일을 가져왔다는 시각이 있다.
"독일은 동방정책이 진행되던 1972년 8월부터 1976년 2월까지도 총 49만6700명에
대해 사상적 적격성을 심사했다. 재미쉬 사건도 그때 있었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동독에 대해 화해의 손을 내미는 듯했으나,
당시 서베를린 시장은 반공의 선봉에서 공산주의 세력들을 다 솎아 냈다.
그러니 서독이 통일을 주도한 거다. 독일은 이런 문제에 대해선 끈질긴 나라다.
독일 내 위헌 단체 감시 자료에는 한국의 범민련까지 스파이 첩보단체로 분류,
기록하고 있고 독일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 통일전선부 조직에 대한 감시
사항이 보고서로 나온다."
―우리 법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한국의 경우 이적단체로 판결이 나도 해체할 수 없다. 독일처럼 아예 단체를
해산시키고 활동을 못하게 감시해야 한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도
바뀌어야 한다. 국보법의 처벌 조항은 적용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독일처럼
각종 법의 세부 조항으로 위헌 단체의 손발과 돈줄을 묶어야 한다.
서독은 동독을 대할 때 얼굴은 웃으면서 뒤로는 무섭게 칼을 휘둘렀다.
그러니깐 독일은 통일한 거다."
'막장 골든벨' 사회자는 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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