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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의 진실 - 조선일보에서 20130319

modory 2013. 3. 19. 06:04

백년 전쟁의 진실 - 조선일보에서 20130319

원로 역사학자 유영익(77) 한동대 석좌교수'백년전쟁 논란'에 일침… "좌파 역사가들 김일성 무장투쟁만 神話化"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이승만 외교가 獨立 보장한 카이로선언(1943년 연합국 美·英·中이 한국 독립을 보장) 이끌어"

김기철 기자 입력 : 2013.03.19 이승만이 분단 주역에 친일파?
- 美여론 돌려놓은 외교도 항일, 그의 업적은 '功 7 過 3'이다
'커밍스의 자식들' 현대사 망쳐
- 대한민국을 美괴뢰국가로 봐… 엉터리 선동이 역사로 둔갑

"대한민국은 휴화산 위에 앉아 있다. 한국 사회를 갈라놓는 이데올로기 분열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균형 잡힌 현대사 교육을 통해 이걸 진정시켜야 하는데, 집권자들은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원로 역사학자 유영익(77) 한동대 석좌교수는 답답해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대통령을 친일파, 반역자로 몰아붙이는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유튜브에서 조회 수 수백만 건을 기록하는 현실에 혼자 맞서기엔 버겁다고 했다. "4·19 때 서울대 정치학과를 막 졸업했다. 이승만이 독재자이고 그의 잘못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훗날 이승만을 연구하면서 이승만이 잘못한 것만 기억하고, 그의 업적은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8일 아침, 경북 포항의 한동대 강의차 서울에서 KTX 열차로 내려가는 유 교수를 동대구까지 동승했다. 유 교수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시각의 분열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다. "이승만이 독재를 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승만의 업적은 최소한 '공(功) 7, 과(過) 3'으로 봐야 한다."

―'백년전쟁'에선 이승만이 1912년 '워싱턴포스트' 기자회견에서 일제의 식민통치를 미화했다며 친일파라고 한다.

"이승만은 대한제국이 무능과 부패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승만의 대일관(對日觀)을 알려면, 필요에 따라 한 인터뷰가 아니라 그가 1913년에 쓴 '한국교회 핍박'이라는 글을 봐야 한다. 이승만은 일본의 침략을 비판했다. 이승만이 노골적으로 친일한 적은 없다. 그랬다면 1919년 한성정부를 비롯, 상해 임시정부에서 대통령으로 거의 만장일치로 추대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사 연구자들은 이승만을 건국의 주역이 아니라, 분단을 가져온 책임자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의 김일성이 민족주의적 정당성을 갖고 있고, 남한에선 여운형이 지도자가 됐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해방 당시 남쪽은 미군,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했다. 소련군이 점령한 북한에 친소(親蘇) 정권이 들어서고, 미군이 점령한 지역에선 친미(親美) 정권이 들어서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었다. 이승만이 택한 노선은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미국의 개입이 없었으면…' 하고 가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사는 '사실'을 연구하는 것이지 '소망'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좌파 진영에선 이승만이 미국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편 외교 운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을 신화화하는 데서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 김일성같이 몇 사람을 찔러 죽이면 대단한 일로 생각하는데, 우리가 그걸로 독립을 얻은 게 아니다. 이승만이 미국 여론을 바꿔놓는 외교·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 1943년 카이로에서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발표가 나왔다. 역사 교육이 제대로 안 돼 무장투쟁만 높이 친다. 책상 위에서 편안하게 펜대를 놀리는 정도로 외교·홍보 활동을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 현대사 연구가 여전히 브루스 커밍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커밍스의 가장 큰 문제는 베트남 반전운동을 하던 그가 미국의 대(對)아시아정책을 비판하는 시각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한 일은 모두 잘못됐다는 전제 아래 한국 관련 자료를 읽었다. 자기 생각에 자료를 끼워 맞춘 셈이다. 6·25 북침설은 수정했다지만, 대한민국이 미국의 괴뢰국가로 탄생했다고 보는 관점은 바꾸지 않았다. 대다수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은 여전히 커밍스의 자식들이다."

유 교수는 "현대사 연구를 게을리 한 역사학계에 한국 사회 이데올로기 분열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학자들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현대사 연구를 제대로 해왔다면, 엉터리 같은 선전·선동이 역사로 둔갑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노학자는 탄식했다.

 
['백년전쟁' 대표적 5가지 왜곡]
①한국 현대사는 '독립'과 '親日'의 전쟁 ②이승만은 반역자에 ③독립자금 횡령범 ④박정희는 미국의 꼭두각시 ⑤다 계획돼 있던 경제개발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한 동영상 '백년전쟁'에 대해 전문가들은 "잘못된 팩트(fact)와 악의적인 해석으로 역사를 왜곡한 영상물"이라고 지적한다.

①한국 현대사가 '독립'과 '친일'의 전쟁?

이 영상물은 한국 현대사 100년이 '레지스탕스(저항 세력)'와 '콜라보(협력 세력)'의 전쟁이라는 논리를 제시하지만, 대한민국 건국 세력을 폄훼하려는 흑백논리적 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영상물이 '레지스탕스'로 분류한 인물 중 이범석은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가 됐으며, 역시 '레지스탕스'라는 여운형은 친일 논란에 휩싸여 있다.

②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

영상물은 이승만이 '친일파'이자 '반역자'였다는 주장을 하지만, 역시 자료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1916년 '호놀룰루 스타 불레틴'지(紙) 기고문을 인용하며 '반일 감정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묘사했으나, 실제로 이승만은 "하와이 한인 학교는 일본인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 뒤 "일본인들은 한국인이 한 민족으로서 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요구했다.

③이승만이 독립 자금 횡령?

이승만을 독립운동 자금을 가로챈 '죄질 나쁜 횡령범'으로 묘사한 것은, 당시 반(反)이승만 세력의 일방적인 말만 받아들여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 돈을 횡령한 것이 아니라, 한인기독학원과 인하대학교 설립 등에 사용했다는 연구가 축적돼 있다.

④박정희의 경제성장은 미국의 작품?

영상물은 미국의 '프레이저 보고서'를 인용해 박정희의 수출 주도형 전략이 미국에 의한 것이었다며, 박정희를 미국의 꼭두각시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당시 개도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각국 경제정책의 세부 사항까지 영향을 미칠 수 없었기 때문에 잘못된 분석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영상물은 '한국 정부는 확고한 신념으로 경제를 주도해 신뢰를 얻었다'는 '프레이저 보고서'의 지적은 누락했다.

⑤경제개발 계획은 숟가락만 얹은 것?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이전에 다 만들어진 것이라는 영상물의 지적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당시 개도국마다 경제개발 계획을 유행처럼 세웠는데, 문제는 계획 자체가 아니라 그걸 시행할 수 있는 리더십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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