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모음♠/♧ 시 모음

자작시 3편

modory 2013. 10. 2. 17:42

◐ 집 ◑ 2013-09-10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간다.

15층 아파트 계단을 올라 간다.

1365개 계단 갓바위 고갯길보다 더 힘들다.

훠이훠이 올라 숨 한번 몰아쉰다.

회색빛 낭떠러지 잡고 계단 하나씩 오른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이 맺힌다

가뿐 숨 몰아 쉬며 전자 번호 키

비밀 번호를 비밀스럽게 누른다.

그리고 별표 살짝 누른다.

자판에 파르스름한 형광색 눈을 떠야하는데

캄캄하고 소리도 없다.

도어록의 손잡이를 비틀어도 꿈쩍도 않는다.

비밀번호가 틀렸는가보다.

아내와 나만 아는 전자 번호 키의 비밀번호를

모르면 내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갑자기 머릿속이 캄캄하다.

다시 한번 숨길 가다듬어

머릿속 기억 창고를 두들긴다.

기억의 실타래가 풀리면서

숫자 여섯이 떠 올랐다.

세상 밖에 나오던 날

생년월일 여섯 개 숫자를 찍는다.

오타없게 조심스럽게

칙,칙,칙,칙,칙,칙, 그리고 마지막 별표

알았어, 자판이 눈을 뜨고 깜박인다.

철거덕.

대문이 열린다.

집으로 들어 간다.

자궁속처럼 아늑하고 적막하다.

창을 연다.

넓은 부처님 가슴은 보이지 않고

벽돌 건물 도시가 발아래 가라앉아 있다.

나는 허공에 선 채

제 철 음식이 보약이라는 아내를 기다린다 ◐

 

◐ 집 ◑  2013-09-11

- 어머니에게 올립니다 -

 

칼바람이 유리창을 흔드는 겨울 한낮

적산 가옥이라 겹집인 어머니의 집

유리창이 컸고, 유리창 다음 마루

마루 다음 방이었습니다.

유리창 닫힌 마루는 온실.

유리창 덜컹거리는 소리

어머니 무릎 베개삼아 누웠으면

어머니는 내 귓속 귀지를 파냅니다.

국민 학교에 갓 입학한 동생은

개다리 소반 책상 삼고 누런 공책에

받아쓰기를 합니다.

어머니는 귀지를 파며 ‘숨바꼭질’이라

부르면 동생은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숨바꼭질이라 받아 씁니다

서너 단어 부르다가 갑자기 문장으로

바뀝니다

‘아이구 큰놈 귓밥 두꺼워 부자되겠데이.’

동생은 눈이 둥그래져 어머니를 올려다

봅니다.

‘아이다. 이거는 아이고 꽃밭..꽃밭’ 합니다

 

햇볕 넉넉하게 들어오던 양지 바른 어머니의 집

어머니의 집에는 겨울에도 햇볕이 가득했습니다.◑

 

◈달밤◈ 2013-09-14

 

아들과 달빛아래 마주 앉았다.

둥근달이 중천에 떴다.

아버지, 어머니 환생이라도 하셨을까

유난히 크고 밝았다.

추석 차례 올리고

둥근 달 잠긴 술잔으로 음복했다.

술 한잔 마시고 돔배기 한점

‘나는 앞으로 허례허식인 제사 안 지냅니다.’

설에도 한 말을 추석에 또 했다.

둥근 한가위 달

새털 같은 구름으로 얼굴을 가렸다

 

생전에 아들 밥상 안 받고 살았는데

죽어 밥상 받으랴?

제사는 산 자의 몫

나는 내 아버지 어머니 제사를 지내는 것

아들이 안 지낼 제사는 나의 제사

제물 너무 많이 진설해 상다리가 부러졌는지

제사를 지내는지 나는 모를 일

내가 없을 이승

 

올 한가위 둥근달보다

더 큰 구멍 가슴에 뚫어 놓고

서울로 떠난 자리

영겁의 세월 담은 보름달

하얀 달빛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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