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4.09.26 23:04 강천석 칼럼
피긴 어려워도 지는 건 잠깐이다
대통령, 균형·공정·투명·포용… 人事로 정치 기반 넓혀야
이익집단, 無謀해야 이긴다… 계속 착각하면 나라 가라앉아
피기는 어려워도 지는 건 잠깐이다. 천(千) 송이·만(萬) 송이로 타올랐던 꽃일수록 낙화(落花) 이후 더 적막하다.
대통령 권력도 같은 길을 밟아간다.
한국 대통령들-쿠데타로 하루아침에 최고 권력 자리에 오른 몇몇 경우 말고는-은 대부분 몇십 년 기다려
그 자리에 올랐다. 기다림의 세월이 길었기에 그들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로
대통령 취임사를 빼곡히 채웠다. 그러나 어느 대통령도 재임중(在任中) 취임 연설문을 다시 꺼내 국민과 한 약속을
점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취임사의 다짐과 약속이 흉한 마마 자국으로 변해버린 사실과 마주하기
거북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반이 됐다. 정확히 19개월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 달수론 60개월이다.
대통령 임기는 이제 얼마 남았을까. 대통령과 대통령 사람들은 아직 3분의 2나 남았다고 믿는 듯하다.
전임 대통령들도 다 한때는 그렇게 계산했다.
우리 정치체제는 대통령 중심제다. 나라 복판·나라 꼭대기에 대통령이 있다는 뜻이다.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에게 국군통수권·공직임명권·사면권 등등 갖가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행정 각부·감사원도 대통령에게 직속돼 있다. 대통령은 눈짓만으로 국가정보원·검찰·경찰·국세청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 사람들은 이 권한이면 나라를 너끈히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임기가 아직 3분의 2나 남았다며 느긋해하는 논리다.
헌법 속의 대통령 권한은 사람으로 치면 뼈에 해당한다. 뼈가 온전하다 해서 마음껏 걷고 힘껏 내달릴 수는 없다.
관절이 유연하고 근육이 튼실하게 붙어야 한다. 대통령 정치력이 정권의 관절과 근육이다. 집권당은 시비하는 듯
끌어안고, 반대당은 밀치는 척하면서 체면을 세워주고, 지지하는 국민을 믿고 기다리게 하고, 반대하는
국민은 참고 지켜보게 만드는 것이 정치력이다. 대통령 잔여(殘餘) 임기를 계산하려면 관절과 근육의 충실 여부를
먼저 따져야 한다. 관절이 닳고 근육이 빠지면 나이와 관계없이 내리막길이다. 임기 후반부를 청와대에 갇혀
지내다시피 한 대통령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은 대통령 하기 힘든 나라다. 이긴 쪽의 포용하는 전통이나 진 쪽의 승복하는 바탕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타협·조정 능력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저(最低)다. 정치·경제·사회적 대결로 지불하는 갈등 비용은 최고로 높다.
이기면 '법대로 하자', 지면 '법이 다가 아니다'며 수시로 태도가 돌변한다. 핵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은 뒤로
한없이 미루고, 발전소를 지을 때마다 송전탑 파동을 되풀이하고, 공무원연금 문제는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기도
힘들고, 자동차 공장 정규직들은 미국·중국 근로자의 2배·3배 받으며 언제까지 경쟁에서 버텨낼 수 있다는 듯
자신만만이다. 발 아래 살얼음이 갈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은 꿈에도 않는다. 무모(無謀)한 쪽이 이기는 사회다.
모두가 눈 질끈 감고 시한(時限)폭탄을 품은 채 미래로 떠내려간다. 세월호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대통령의 정치력을 높여야 한다. 대통령의 정치력을 키우는 원리는 수력발전, 특히 낮은 곳의 물을 높은 데로
끌어올려 흘려보내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揚水)발전 원리와 비슷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다섯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은 김영삼 42%, 김대중 40.3%, 노무현 48.9%, 이명박 48.7%, 박근혜 51.6%였다.
이걸로는 국가의 시급한 현안, 정권의 최우선 과제를 밀고 나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반대파를 껴안아 지지도를
끌어올려 그 낙차(落差)를 이용해 추진력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균형 인사(人事)·공정 인사·투명 인사·포용 인사가
대통령의 정치력을 높이는 양수발전소(揚水發電所) 구실을 한다. 박근혜 정부에선 이 정치의 초보 원리가
출발부터 행방불명돼 버렸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것이 극단 사회를 또 한번 극단으로 몰아갔다. 정권마다 행정수도 이전, 4대강 사업,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제로 온 나라를 뒤집고 몇 년 몇 달을 지지고 볶았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면 야당 지지율은 그 곱절 이상 추락하는 게 우리 정치 체질이다. 야당이
국민 눈 밖에 난 것이다. 대안(代案) 세력으로 치지도 않는 모양새다.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는 국민은 자기편이라
믿는 '바보 산수'로 대선·총선·재보선에서 패배를 쌓아왔다.
대통령이 취임 1년 반을 성공으로 평가한다면, 지금 이대로 가보는 거다. 야당 또한 이대로 가보라. 그렇게 해서
함께 바닥까지 가라앉아 모두 제 손바닥으로 바닥을 한번 만져보는 수밖에 없다. 피기는 더뎌도 지는 건 잠깐이다.
나라 운명과 국민 팔자(八字)라 해서 다를 게 없다.
대한민국은 2100년까지 힘든 국가가 되어 가고 있는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진 후에 통탄한들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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