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재발견◑/♣여행

하회 마을 퍼 온 것

modory 2016. 5. 23. 07:35

하회마을 표석


 

 

하회마을

 

 

안내현판

 

 

안내지도

 

 

 

 

 

마을전경

 

 

 

 

기념품 판매점

 

 

마을전경, 담장은 높고 견고하게 쌓았습니다.

 

 

 

 

 

하회탈

 

 

규수댁, 솟을대문

 

 

 

 

 

 

 

양진당 안내글

이집은 풍산류씨 대종택으로 류씨가 하회마을에 들어 와 최초로 지은 집이기에 유서가 깊다.

15세기 무렵에 지은 후 임진왜란 때 화재를 입기도 하였고 여러 대에 걸처 지어진 흔적이 남아있다.

대종택 답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문중 모임을 이댁 사랑채에서 가진다.

양진당이라는 이름은 풍류씨 족보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의 호에서 따온것이며, 사랑채에 걸려있는 현판(입암고택)은 류성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에서 따온것이다.

 

 

 

양진당, 솟을대문

 

 

양진당, 풍산류씨 겸암파의 대종택으로 보물306호 이다. 사랑채(입암고택는 류성룡의 아버지 류중영의 호)

 

 

양진당 안채은 보수 공사로 더이상볼 수 가없어 아쉬웠습니다. 

 

 

 

 

 

양진당 전경, 보수공사중

 

 

충효당 안내글

 

 

 

충효당 솟을대문

 

 

 

충효당 사랑채

 

 

 

충효당, 서애 류성룡의 집

 

 

 

 

 

 

 

 

 

영모각 입구

 

 

서애 류성룡(1542~1607)

 

 

류성룡 선생 연보

 

 

 

 

 

징비록 저술

 

 

 

 

 

 

 

 

충효당 앞

 

 

달봉이네 카페

 

 

 

 

 

민속놀이터

 

 

만송정

 

 

부용대

 

 

 

 

 

강변의 만개한 벚꽃

 

 

 

 

 

 

 

 

기념품 판매점

 

 

 

마을입구 조각품

 

 

부용대 위에서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화천서원, 부용대 가는길 입구에 있습니다.

 

 

화천서원

 

 

 

화천서원

화천서원은 유운용(유성룡의 형), 유원지, 김윤안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인재를 양성하고 추모하기위해 1768년(정조10)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화천서원 전경

 

 

 

 

하회장터

 

 

하회장터 정자

 

 

하회장터 저잦거리

 

 

 

 

 

하회탈세계박물관

 

 

 

 

 

하회탈세계박물관

 

 

박물관 전경

 

 

안동찜닭(간고등어가 유명합니다


부용대 2016-05-23

부용대는 하회마을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절벽 해발 64미터의 절벽이다.

부용대에 가는 방법은 하회마을 송림에서 나눗배를 타고 건너 가거나 돌아 차를 몰고

화천서원으로 가서 서원 뒷편으로 오르는 방법이 있다.

부용대(芙蓉臺)를 처음에는 하회 북쪽에 있는 언덕이란 뜻에서 북애(北厓)’라 불렸다고 하며,

중국 고사에서 따온 '부용'은 연꽃을 뜻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 모습이 연꽃 같다고 하여 부용대라 일컬었다.

부용대는 류성룡 집안의 역사가 흐른다. 절벽아래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했다는 옥연정사, 류성룡의 형인 류운룡(柳雲龍)의 학덕을 기려서 유림들이 현 위치에 세운 화천서원과 겸암정사이 자리한 한 언덕.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 64m의 절벽 ,

모래사장이 있는 나루터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옆의 화천서원은 서애 서원이다.

1786년에 건립하여 그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를 지내오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되었다.

후손들은 기금을 모아 사림들의 공론으로 1996년 복설했다고...

유운룡은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한 유성룡의 형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형이 더 훌륭했지라고 말했을 만큼 지혜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여러곳의 수령을 지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거처를 옮겨다녔고,

16세 때부터 퇴계 이황에게 학문을 익혔는데, 이 무렵 이황은 모든 벼슬을 버리고

은둔의 선비로 자처하며 고향에서 제자 기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고 한다.

서원을 돌아보고나서 하회마을로 이동한다.

 

이집은 풍산류씨 대종택으로 류씨가 하회마을에 들어 와 최초로 지은 집이기에 유서가 깊다.

15세기 무렵에 지은 후 임진왜란 때 화재를 입기도 하였고 여러 대에 걸처 지어진 흔적이 남아있다.

대종택 답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문중 모임을 이댁 사랑채에서 가진다.

양진당이라는 이름은 풍류씨 족보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의 호에서 따온것이며, 사랑채에 걸려있는 현판(입암고택)은 류성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양진당, 풍산류씨 겸암파의 대종택으로 보물306호 이다. 사랑채(입암고택는 류성룡의 아버지 류중영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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