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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기자 박해현의 문학산책 - 조선일보 2016-07-07

modory 2016. 7. 7. 05:20

       

    문학전문기자 박해현의 문학산책 - 조선일보 2016-07-07

    삶은 제 몸에 못을 박고 못을 빼는 일

     

    노벨문학상을 받은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어느 시인의 비문'이란 시를 남겼다. '그는 노래하고, 노래하고 싶었다/ 거짓들로 이루어진 자신의 진짜 삶을/ 망각하기 위해,/ 진실들로 이루어진 자신의 거짓스러운 삶을/ 기억하기 위해.'

     

    옥타비오 파스는 시인의 일상적 삶을 문학적 삶과 구분했다. 시인은 하찮고 공허하고 비루한 현실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잊어버리려 한다. 그는 남몰래 쓰는 시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삶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가 제 몸에 시를 하루하루 새기다가 육신을 버리고 세상을 뜨면 시의 언어만 남아 독자들이 그의

    시집을 묘비석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그 시인에 관한 이런저런 회상은

    부질없다. 오로지 시만 그의 삶을 기억하게 한다.

     

    한국 시인협회장을 지낸 김종철 시인(1947~2014)2주기를 맞아 최근

    '김종철 시전집'이 나왔다. 1968년 등단한 시인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남긴 시집 아홉 권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는 흔히 '못의 시인'으로 불렸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뒤부터 마치 시의 금맥(金脈)이라도 찾은 듯 '' 이미지를

    줄곧 파고들면서 못에 관한 연작시를 꾸준히 썼다. 시집 '못에 관한 명상',

    '못의 귀향', '못의 사회학'을 잇달아 펴냈다.

     

    '마흔다섯 아침 불현듯 보이는 게 있어 보니/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못들이 박혀 있었다/ 깜짝 놀라 손을 보니/ 아직도 시퍼런 못 하나 남아 있었다/ , 내 사는 법이 못 박는 일뿐이었다니'(사는 법-못에 관한 명상·6)

     

    그는 평이한 언어로 '' 연작시를 썼다. 시선(詩仙)의 경지에 오른 단순함의

    깊이를 보여줬다. 못은 노동의 도구이기도 하고, 흔히 '가슴에 못을 박는다'

    비유처럼 삶의 고통을 가리키는 이미지이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처럼 종교적 상징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 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 쓰윽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고백성사-못에 관한 명상·1)

     

    김종철 시인은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다. 그의 시에서 못은 사람이 스스로 저지르는 죄업이기도 하지만, 뼈 아픈 참회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삶이란 못을 박고

    못을 빼는 일의 되풀이"라고 피력한 적도 있다. 문제는 그 짓을 죽도록 되풀이한다는 점에서 삶의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것이다. 동료 시인들은 그를 '못의 사제(司祭)'라고 근엄하게 부르면서 동시에 '철물점 시인'이라거나 '못 쓰는 시인'

    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 쓰는 시인'이고 '(시를) 못 쓰는 시인'이란

    소리였다.

     

    김종철 시인은 한국시인협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췌장암이 악화돼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내장과 비늘을 제거한 생선이/ 먼저 걸리는 생의 고랑대'에 묶인 처절한 순간을 맞아 '몸만 남은 체면이 기도의 바짓가랑이 붙잡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순명'하던 시인은 유작(遺作)을 고치고 고쳤다. 혹시나 자꾸 쓰다 보면 유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옅은 희망도 품은 채. 그러나 그는 '혹시 시간 지나 책이 되어 나오면 용서 바란다. 그리고 잊어주기 바란다'는 마지막 시집 서문도 써놓았다.

     

    그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항암제 따라/ 죽음의 순례를 시작한 나는/ 살아있는

    모든 고통은/ 옷 껴입은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나지막하게 읊었다.

    영혼과 육신이 알몸과 의복의 관계였으니, 겹겹이 쌓인 고통의 옷을 벗어 영혼의 알몸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병상에서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에서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평정심은 임종 직전에 느닷없이 솟아오른 게 아니었다. 그는 한창 건강했을 때 중국 여행 중 등신불(等身佛)을 보곤 나름대로 삶과  죽음의 이치를 깨달아 절창을 남기기도 했다.

     

    '등신불을 보았다/ 살아서도 산 적 없고/ 죽어서도 죽은 적 없는 그를 만났다/ 그가 없는 빈 몸에/ 오늘은 떠돌이가 들어와/ 평생을 살다간다'(등신불).

     

    시인은 날마다 못을 박고 빼듯이 시를 썼다 고치다가 절로 묘비명을 새기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