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논설고문 강천석 칼럼- '美食 烈風' 시대의 不安 입력 : 2016.07.08 23:14
2016년 무더위 속 한국 분위기를 대표하는 단어는 '무관심'이다. 시절이 태평해서가 아니다. 정부는 며칠 건너 경제 긴급 대책을 발표하고 각종 의혹과 부정에 대한 수사가 동시 진행 중이다. 긴급 대책 하면 보통 10조원 단위고, 부정(不正)하면 100억원대 규모다. 그런데도 다들 심드렁하다. '그래봤자 달라진 게 없었다'는 경험 법칙을 믿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혹은 주중(週中)에도 데모대가 서울 복판 차도(車道)를 점령해 뒤풀이 술판을 벌여도 그러려니 할 뿐이다. 구호가 뭔지 묻지도 않는다. '그래봤자 역효과(逆效果)만 불러온다'는 걸 터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정책'과 '대안(代案)이 될 수 없는 반대'에 질린 상태다. '무관심'은 이 상태에서 심리적 방탄복(防彈服)이자 탈출구(脫出口)다.
무관심 세태 속 돌출(突出) 관심사가 요리다. 어느 시간에 TV 채널을 돌려도 한두 개 요리 프로그램을 만난다.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건강 식단(食單) 만들기도 있고 산해진미(山海珍味) 프로도 있다. 어느 여배우의 냉장고를 열어젖히자 프랑스에서 공수(空輸)해온 진기한 버섯과 지중해산(産) 요리 재료가 그득했다. 배곯던 기억을 지우지 못한 '쉰 세대'에겐 호기심에 이어 '이러고도 벼락 안 맞겠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요리 제국은 계속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TV 드라마 무대는 으레 레스토랑이고, 주인공은 요리사라는 우리말 단어를 밀어낸 서양 셰프(Chef)다. 한식의 세계화는 창조경제의 어엿한 멤버다. 미식(美食)의 대중화가 '인민에게 이밥과 고깃국을 먹이겠다'는 혁명 목표에 한참 미달(未達)한 북(北)과의 체제 경쟁에 승리의 마침표를 찍는 일인 듯도 싶다. 그렇다 해도 지나치면 화(禍)를 부르는 법이다. 온 나라를 휩쓰는 이상(異狀) 미식 열풍(烈風)에 대한 '까닭 모를 두려움'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니다. 영국 에드워드 7세 시대(1901~1910)는 훗날 대영제국 종말의 시작이라 불리는 시대다. 경제 위기·계급 갈등·교육과 과학 기술의 정체(停滯)·후발(後發) 국가 독일의 추격·식민지 반란 등 각종 위기가 눈덩이처럼 뭉쳐져 굴러왔다. 입 달린 사람은 모두 '국가 위기'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런데도 개혁마다 중도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지지 세력에게 발목 붙들린 엇비슷한 개혁이 좌절할 때마다 국가 체질 속엔 웬만한 정책 처방에는 꿈쩍도 않는 내성(耐性)이 쌓여갔다.
'그래봤자 달라지는 게 없는 개혁'과 '오히려 역효과만 부르는 개혁'에 염증 난 국민 사이에 이상한 풍조가 번져갔다. 그중 하나가 맛없는 음식도 달게 먹는다던 영국인을 바꿔놓은 미식 열풍이다. 맛집을 찾아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이탈리아까지 맛 순례(巡禮) 행렬이 이어졌다.
맛집 찾기와 짝을 이룬 게 건강 산업 붐이다. 몸에 좋은 약과 식품 광고가 광고의 대종(大宗)으로 올라섰다. 위장병·피부병·폐결핵에 효과가 좋다는 독일 온천들은 영국 단체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공공(公共)문제에 대한 관심이 식어갈수록 식도락(食道樂)과 건강에 대한 이상 열기는 더 높아졌다.
마음에 걸리는 게 또 하나 있다. 영국 정계·관계·경제계는 본래 해외에서 뛰어난 실적을 거둔 인사들이 무대를 주름잡았다. 해외 근무가 곧 입신(立身)의 기회였다. 여기에도 금이 갔다. 해외 근무 명령을 받으면 사표를 내는 사람이 늘어났다. 1905년 보고서는 바다의 왕국 영국 상선(商船) 선장의 85%, 선원의 70%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불안감을 나타냈다. 기우는 나라들의 사정은 뭔가 닮은 구석이 있다.
나라 걱정을 쏟아내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이대로 몇 년 더 흘려보내면 '4대 개혁' 운운하는 오늘을 좋은 시절이었다며 돌아볼지 모른다. 경고등(警告燈)이 켜지는 건 위기가 아니다. 경고등마저 꺼질 때가 진짜 위기다. 그땐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 영국인을 불안하게 만들던 영국 쇠망론(衰亡論)은 1920년대 후반 자취를 감췄다. 우리 곁 위기론도 언젠간 사그라들 것이다.
국민 자성론(自省論)과 한계론(限界論)이 등장할 만도 하다. 나라의 성쇠(盛衰)를 가르는 요인의 하나가 국민의 의식과 태도다. 그러나 그 역(逆)도 진리다. 나라의 번영과 쇠퇴가 국민의 의식과 태도를 바꿔놓는다. 국민을 바꿔 나라의 운명(運命)을 바꾸고 싶다면 국민에게 먼저 성공 체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4대 개혁' 전체의 성공은 욕심내지 않는다. 해가 많이 기울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치에도 체면이 있다면 개혁 하나는 성사(成事)시켰다는 기록은 남기라는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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