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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죽도록 ― 이영광(1965∼ )? [조선/ 2017.03.06]

modory 2017. 3. 15. 05:48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죽도록 ― 이영광(1965∼ ) [조선/ 2017.03.06]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일러스트 죽도록 ― 이영광(1965∼ )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라는
학원 광고를 붙이고 달려가는 시내버스
죽도록 굶으면 죽고 죽도록 사랑해도 죽는데,
죽도록 공부하면 정말 죽지 않을까
죽도록 공부해본 인간이나
죽도록 해야 할 공부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저 광고는 결국,
죽음만을 광고하고 있는 거다
죽도록 공부하라는 건
죽으라는 뜻이다
죽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옥상과 욕조와 지하철이 큰 입을 벌리고 있질 않나
공부란 활활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도
자정이 훨씬 넘도록
죽어가는 아이들을 실은 캄캄한 학원버스들이
어둠 속을 질주한다, 죽기 살기로


('아픈 천국', 창비, 2010)


우리는 좋아 죽고 예뻐 죽고, 배불러 죽고 배고파 죽고, 웃겨 죽고 화나 죽고, 억울해 죽고 쪽팔려 죽고, 기막혀 죽고 어이없어 죽는다. 한데 사람은 의외로 잘 안 죽는다. 이제는 늙어서도 잘 안 죽는다. 얼마나 죽고 싶고 죽기도 어려우면 말끝마다 이렇게 죽고 싶어 하는 걸까. 삼월이고 봄이고 개학이다. 대한민국 열혈 학부모와 학원들이 죽도록 공부해야 한다며 앞서 다짐하는 시즌이다. 학생들은 죽도록 공부하기 싫어서 죽고, 죽도록 공부만 시켜서 죽어간다. 해가 떠 있는 우리 거리에서 아이와 젊은이들이 사라져가고 나이 든 사람들만이 활보하는 이유다. 공부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 죽을 둥 살 둥 낳아 자신처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미래라면, 우리는 죽기 살기로 지금-여기를 바꾸어야만 할 거 같은데….[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출처 : 설지선 & 김수호
글쓴이 : 설지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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