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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먼지가 보이는 아침 ― 김소연(1967~ ) [조선/ 2017.02.20]

modory 2017. 3. 15. 05:49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먼지가 보이는 아침 ― 김소연(1967~ ) [조선/ 2017.02.20]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일러스트 먼지가 보이는 아침 ― 김소연(1967~ )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노래 '먼지가 되어'를 조곤조곤 잘도 부르는 사람을 알고 있다. 햇살 반 먼지 반으로 들어오는 아침나절의 백색 기둥에 기대 커피를 마시며 조간신문을 넘기는 시간을 사랑한다. 내려앉은 백색 바닥에 발이라도 대고 있다면, 발끝에서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온다면, 그건 그대로 극락일 것이다.

식물이든 새든, 낙원의 새든 부처의 가르 빙가든, 발이 없든 날개가 없든, '극락조는 극락조'일 것이다. 다른 이름이 '어느새'이고 '잠깐새'이고 '깜빡새'일 것이다. 고무줄을 밟던 발의 뜨거움이나 다음 생을 향해 내민 발의 차가움을 떠올리다 보면 더더욱. 햇살이, 발끝이, 고무줄이, 저 극락조가, 여기 내가, 다 먼지다. '조용을 조용히 다해' 불러본다,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출처 : 설지선 & 김수호
글쓴이 : 설지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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