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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국가 정보원장

modory 2007. 9. 5. 16:46


동아일보 시론 07080905★벌거벗은 국정원장 ★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국가의 품격이 말이 아님을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수신제가(修身齊家)하고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가는 첫 단추인 수신조차 안 된 공복(公僕)들이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옷을 벗어던지고 온 세상의 거리를 질주한다.
  권위를 잃은 부끄러운 벌거숭이가 되었음을 잊은 소치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구할 때에도 품격은 지켜야 한다. 그렇지 못한 국가는 
그 이름을 지키지 못해 슬픈 존재가 된다. 국가는 고정돼 존재하는 형상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매일 쌓아 가는 흐름의 마디마디마다 존재하는 이미지이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회의원 그리고 국가정보원장 등이 
쌓아 놓는 이미지는 더 그렇다. 그런 형상들로 꾸며지는 국가가 건강할 때 
우리는 존엄하고 행복해진다. 
지금 우리는 존엄하지 못하고 행복하지도 않다. 선교 또는 봉사의 선행을 
행하고자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납치해 인질로 삼는 악행을 
행한 탈레반이라는 반도(叛徒) 단체를 대한민국이 동등한 자격에서 
‘협상(negotiation)’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기에 그 사유가 어떻든 이들 생명을 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가적 품격은 지켰어야 한다는 
헌법적 당위성은 잃었다.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하에 두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 
그래서 국정원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지고 지휘해야 할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을 
대신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그 국정원장이 국정원 요원과 함께 세상 사람들의 눈에 노출됐다. 
보안을 생명으로 알아야 한다는 국정원 직업윤리헌장에 반하는 이 모습은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탈레반이라는 반군을 동격으로 인정하는 순간의 확인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노출을 원했다. 국정원장 귀국 시 석방 주역임을 자처하는 
보도자료를 뿌리는 등 아마추어적 자화자찬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였건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노출을 원했건 
그 어느 경우이든 국가가 아닌 반군 탈레반에는 더할 나위없는 예의를 
지킨 것이고 대한민국과 아프가니스탄 등의 국가에는 결례한 것이다. 
하지만 그 예의는 국가적 권위를 잃은 값싼 것이었다. 
그러니 탈레반이 바로 또 다른 한국인을 공격하겠다는 오만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국정원장 노출은 테러 납치단체와는 국가 차원의 협상이 없다는 국제사회의 
오랜 관례를 대한민국이 깼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외교통상부 장관은 부인하지만 외신이나 언론에서 운위되는 ‘몸값(ransom)’ 
지불의 개연성을 갖게 한다. 한국이 아프간 반군의 투쟁에 기여하고 있다는 
국제적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등 국격(國格)을 손상한 것이다. 
국정원은 물론 노무현 정부,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제적 신뢰는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제2, 제3의 한국인 인질 납치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 특사가 가고 국정원장이 
갈 것인가. 소말리아 반군에 인질로 잡힌 원양어선 선원들을 위해서는 
언제 갈 것인가.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여전히 불법적 점거단체인 북한에 피랍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언제 대통령 특사가 가고 국정원장은 언제 공개적으로 협상할 것인가. 
차라리 ‘납치협상부’를 두는 것은 어떤가. 
국정원장은 그 노출로 인해 국정원의 정부조직상의 기능을 이렇게도 우습게 
손상시킨 것이다. 이런 반(反)수신적 공복의 행태를 막으려면, 대한민국 
국민도 이제 자기의 권리만 주장하는 시민으로서의 국민이라는 알을 깨고 
나와 공동체적 책임도 묵묵히 지는 공민(公民)으로 스스로를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고위 공직자들이 국민을 무서워하고 사린다.★
^^* 東雲2007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