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정윤재 게이트’가 점차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많은 소문과 설이 떠돌고 있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 이름이 거론된 인사들은 한결같이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쏟아낸 말들 가운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 신정아 게이트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시중의 ‘몸통’ 소문을 의식한 듯 12일 “세간에 (신정아 씨 사건과 관련해) 크게 보도되는 내용 때문에 솔직히 저희가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이날 서울 잠실 롯데월드호텔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도서관 축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과 제가 (시중에 떠도는 윗선이) 누구냐고 서로 얘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특히 “대통령이나 저나 중앙정치에서는 이단적인 존재라서 인맥이나 인연이 일천하다”면서 “기본적으로 아는 사람이 많이 없으며 특히 문화예술계 쪽은 전무하다고 보셔도 된다”고 강조했다.
권 여사가 “모르는 일”이라고 직접 해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윗선’ 의혹이 가시지 않자 청와대는 권 여사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의혹 불식을 시도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신 씨의 청와대 출입이 2번 이상이 될 것이란 의혹이 자꾸 제기된다’는 질문에 “얘기를 돌아가지 말자. 한나라당이 ‘윗선’이라고 얘기하는데 어느 분을 지칭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다”며 “권양숙 여사는 신 씨를 면담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거짓말 릴레이를 이어 갔다. 그는 신 씨의 가짜 학위 파문을 무마하기 위해 장윤 스님에게 전화를 하고 직접 만나 부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변 전 실장은 “미술에 관심이 많아 신 씨를 알고 있지만 친분은 없다”고 해명하며 계속된 의혹 제기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변 전 실장은 지난달 31일 청와대 오찬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무원 30년 바르게 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긴 뒤 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 씨와 수년간 사적인 e메일을 수백 통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였다는 것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뒤에는 말을 번복했다. 변 전 실장은 10일 대통령민정수석실 조사에서 “장윤 스님을 만났을 때 신 씨 문제를 언급한 사실이 있고 신 씨와 예일대 선후배 관계로 수년 전부터 잘 아는 사이로 빈번한 연락이 있었다”고 말했다. 변 전 실장은 사표를 낸 뒤 검찰 출두를 앞둔 13일에는 “물의를 일으켜 국민께 너무 죄송하다. 대통령께도 너무 누를 많이 끼쳐 정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신정아 배후’라는 소문이 돌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12일 “(신 씨와) 일면식도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11일 대통합민주신당 경선후보 토론에서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변 전 실장이 이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연루 의혹을 제기하자 “그 당(한나라당)에서 쓰던 용공음해 수법은 그 당에서 쓰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렸던 아프리카 미술 전시회를 기획했던 한 전시기획자는 “전시회를 구경 온 이 전 총리에게 인사하러 온 큐레이터 신 씨를 소개해 줬다”며 “그 후 두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증권가 정보지 등에서 의혹의 윗선 인물 중 한 명으로 거론된 대통합민주신당 이광재 의원도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신 씨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이 의원은 신 씨에 대해 “국회 문광위원을 했으니 오다가다 스쳤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몇 차례 만났다거나 제대로 만난 적은 일절 없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 박물관, 미술관 기부 법안을 만들었다. 그때 미술 관련 전문가를 잘 몰라 아는 사람에게 소개해 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때는 신 씨가 잘나갔을 때 아니냐. 만약 신 씨를 만났다면 관계가 계속 유지됐을 것 아니냐. 교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신 씨를 청와대 윗선에 소개했다’는 의혹에 대해 이 의원은 “미친 소리다. 무슨 일만 터지면 내 이름 나오는 게 한두 번이냐. 나는 과거 특검 조사도 두 차례나 받았다”고 부인했다.
이 의원은 변 전 실장과 예산 문제로 통화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산 많이 따내려고 기획예산처 장관 출신인 변 전 실장한테도 전화했고, 행정자치부 장관한테도 전화하고 그랬다”고 말했다.
“신 씨 임용 과정에서 압력이나 청탁은 없었다”고 주장했던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은 검찰 조사에서 ‘변 전 실장의 추천을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검찰에서 “2005년 8월 대학원 미술사학과 신임교수 임용 당시 변 전 실장이 ‘예일대 후배인데 유능한 큐레이터’라며 신 씨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홍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는 극구 피하고 있다. 그는 사건 초기인 7월 20일 ‘동국 가족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4쪽짜리 문건을 통해 이 사건과 관련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유능한 교수를 초빙하려다 총장과 대학 행정당국이 어처구니없이 속은 사건이지 어떤 은밀하고 부도덕한 거래가 개입된 채용 비리 사건이 결단코 아니다”라며 “우리 대학과 본인은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신 씨의 거짓 학력을 처음으로 언론에 폭로한 장윤 스님 역시 말을 바꾼 뒤 언론과의 접촉을 끊었다. 장윤 스님은 신 씨 파문이 불거진 뒤인 7월 변 전 실장과 만난 사실이 알려지자 조계종 대변인을 통해 “변 전 실장을 만나 전등사 등의 문제를 상의했지만 신 씨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6일 대리인인 이중훈 변호사를 통해 “변 전 실장과 만나 동국대를 걱정하는 차원에서 신 씨 문제를 포함한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변 전 실장에게 요청해 예산 10억 원을 자신의 절 흥덕사에 지원받으려 했던 동국대 이사장 영배 스님은 신 씨에게 돈을 줬다는 의혹과 관련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는 20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신 씨에게 돈을 줬다는 이야기는 말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배 스님은 “신 씨는 2006년 9월 동국대 100년사 편찬을 맡기기 위해 실무자의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났다”며 “신 씨의 교수 임용 전후에는 그를 알지도 못했고 만나거나 통화한 적도 없으며 교수 심사 및 임용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변 전 실장은 2006년 초 그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있을 때 다른 스님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처음 인사했으며 올해 초 그를 만났을 때 흥덕사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다”라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정윤재 게이트
부산의 건설업자 김상진(42) 씨의 정·관계 전방위 로비 의혹 사건엔 노무현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과 국세청 고위간부, 국회의원, 아파트 재개발 사업현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현직 구청장, 검찰과 경찰 간부 등이 등장했다. 수사가 진행되면 제2, 제3의 권력 실세가 더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지난해 8월 김 씨에게서 1억 원을 받았다고 시인한 정상곤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은 구속 수감 중이다. 정 전 청장은 최근 본보와의 구치소 인터뷰에서 ‘김 씨에게서 1억 원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했으나 뇌물은 아닌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구치소가 아니라 법정에서 할 이야기”라고 말했다.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은 처음 김 씨와의 연루 의혹이 제기됐을 때 “김 씨에게서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달 초 김 씨가 정치후원금을 줬다는 보도가 나오자 “2003년 3월경 정치후원금 2000만 원은 받은 적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이 구속영장에서 적시한 2000만 원 추가 수수 혐의에 대해 그는 “당시 집에 지인과 가족이 많아 돈을 주고받을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올 6월 김 씨에게서 1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이위준 부산 연제구청장은 “토요일인 6월 30일 김 씨가 점심식사 뒤에 돈 가방을 건넨 뒤 급히 떠났다”며 “연락이 안 돼 월요일인 7월 2일 김 씨를 불러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이 구청장은 김 씨가 추진한 연제구 연산동 아파트 개발사업의 인허가권을 쥐고 있다.
정 전 청장이 받은 1억 원의 사용처와 관련해 검찰에 수사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전군표 국세청장은 “당시 만난 검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국세청의 신뢰가 훼손되고, 정 전 청장이 30년간 쌓아온 명예가 실추된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2000년경 김 씨 형제가 정 전 비서관 이외에 또 다른 정치인들에게 H토건의 공사와 관련한 민원을 제기했다는 의혹에 대해 당사자들은 선을 그었다.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했다가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C 씨는 “(김 씨 형제가) 선거 때는 별로 도와주지 않다가 선거가 끝난 뒤 민원을 하기에 가까이 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12일 밤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한 술집에서 정 전 비서관과 정모 변호사와 함께 검찰 수사와 관련해 의견을 나눴던 이정호 전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단순 모임’이었다고 항변했다.
이 전 수석은 “정 전 비서관의 검찰 소환조사를 앞둔 대책회의라고 (일부 언론이) 표현하는데 대책회의를 칸막이도 없는 호프집에서 하겠느냐”고 말했다.
올 4월과 5월 김 씨와 두 차례 골프를 쳐 구설에 올랐던 부산지검 특수부장 출신의 검찰 간부도 “골프모임 이후 김 씨가 ‘공갈을 당하고 있다’고 하기에 ‘수사기관에 신고하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김 씨와 7월 초순 점심식사를 한 부산 연제경찰서 박모 서장도 “김 씨가 ‘관내에서 사업을 하는데 인사라도 하자’고 식사를 제의해 간부들과 자리에 나갔다”며 “로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 씨에게서 지난해 7월 정치후원금 500만 원을 받았던 한나라당 김희정(부산 연제) 의원도 “(김 씨가) 나의 ‘팬클럽 회원’이라고 했다. 나와는 엮일 게 없고 진짜로 내가 좋아서 (후원금을) 준 것으로 알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구속된 김 씨의 추가 진술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 진술의 진위를 가려낼 방침이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