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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양심 - 정성진 법무부 장관 신문 인터뷰

modory 2008. 1. 14. 10:50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양심

▶노무현 정권에서는 비판신문과 인터뷰를 금기시 했다. 그러나....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동아일보와 인터뷰했다.

“BBK특검법, 법률가 시각에서 반대한 것”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1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합헌 결정을 내린 ‘BBK 특별검사법’에 대해 “정치의 영역이 법을 넘어선 것”이라며 위헌의 문제가 있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재임 중 사면 문제가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신원건 기자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11일 본보와의 비공식 인터뷰에서 ‘BBK 특별검사법’에 대해 “정치의 영역이 법을 넘어선 것으로 본다. 법을 정치의 수단 및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가 10일 특검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참고인 임의동행 명령제 조항 이외에 대부분 합헌 결정을 내린 직후였다.

정 장관이 특검법 등 현안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한 것은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다음은 정 장관과의 일문일답.

○ ‘BBK 특검법’은 정략적으로 만들어졌다

―헌재가 특검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법무부의 위헌 의견과 달리 대부분의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정부를 대표하는 장관으로서 말할 수는 없고 법률가로서 보면 헌재 재판관들의 배경이 좀 드러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이 사건 수사를 했던 검사가 직접 헌법소원을 냈다면 (권한 침해가 더 부각된다는 점에서) 헌법소원이 성립될 여지가 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든 헌재의 결정은 존중해야 한다.”

―특검법 발의 단계부터 법무부 장관으로서 이례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많이 냈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입법이라 의견 표명을 일관되게 했다. 제일 기분 나쁜 게 어느 한쪽 편을 든다는 비판이었다. 편을 들 이유가 없었다. 순수하게 법률가로서 판단했다. 특검법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정략적으로 만들어졌다. 위헌성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법을 급속하게 만들어 법적 완결성이 많이 떨어진다. 예를 들면 특검법 수사 대상에 자금세탁 의혹이 포함돼 있다. 관련 법 규정의 시행 시점은 2001년 11월인데 의혹 행위는 2001년 3월에 이뤄졌다. 수사 대상이 없는 것이다. 행정부에서 국회에 재의 요구를 해 견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대통령에게 꾸준히 건의했다. 대통령도 법률가라 그 점을 상당히 이해했다. 그런데 정치적 부담이 있으니 단순하게 법리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대통령도 법률적 문제를 쭉 파악했으나 12월 16일 BBK 동영상이 공개되고 검찰 수사결과 발표가 국민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그 간극 때문에 결국 지휘권 발동 검토까지 나오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대선 결과가 나온 뒤 나는 사실 좀 기대를 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20일 대통령에게 특검법의 수사 대상인 의혹들이 대선을 통해 국민에 의해 해소됐다고 볼 측면도 있고, 법 자체의 위헌성도 있으니 국회에 재의 요구를 할 것을 건의했다. 대통령도 수긍했다. 정치권에서도 그런 것을 뒤늦게 인식하고 노력한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국무회의를 지난해 12월 26일로 늦추면서 그날 아침까지 노력을 하면서 나름대로 고민을 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대통령이 정치적인 부담을 느낀 것 같다. 정치권이 유연하게 대통령의 위신을 세워주면서 정치적으로 풀어갔어야 했는데….”

―검찰의 BBK 사건 수사 상황을 중간에 대통령에게 보고했나.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이 사전 보고를 요구하지 않았다. 수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도 공개적으로는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 세상의 어떤 집단도 자기만 옳다는 우월의식 버려야 한다

―법원의 영장 기각 문제로 검찰과 법원이 갈등을 많이 빚었다.

“검찰과 법원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발견한다는 측면에서 서로 협조해야 할 관계다. 한쪽은 수사의 당사자고, 한쪽은 판관이니까 거리가 멀면 좋다는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과 법원 간 갈등 해소 방안을 찾았나.

“법무부 장관이 되고 보니 검찰과 법원의 사이가 최악이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재판기관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노력을 해야 법원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어떤 집단도 자기만 옳다는 우월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과 경찰의 관계도 이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자치경찰제 도입과 경찰수사권 독립 문제가 제기되지 않겠나.

“국민의 권익이 기준이 돼야 한다. 자치경찰제는 추세가 그렇게 가는 것 아닌가.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문제는 그동안 충분히 논의됐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는 시점에서 다시 끄집어내는 건 좋지 않다.”

○ 조직 개편의 기준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여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직접 수사기능 폐지 문제도 거론했다고 한다.

“검찰 조직 차원에서 볼 게 아니라 어느 쪽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부패 척결과 사회 정의에 도움이 되느냐는 문제다. 존속과 폐지엔 다 장단점이 있다.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처럼 중앙의 직속 기구가 아니면서 잘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검찰은 검찰총장의 직속 구조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올린 측면이 있다. 그런 점들을 잘 헤아리고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7대 대통령선거 전날 평양을 방문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이 언론에 공개돼 관료들의 자세가 문제가 되고 있다.

“관료들의 업무에 대한 치밀성 전문성 능률성을 잘 살려가야 한다. 자존심을 갖고 천박한 모습을 안 보여야 한다.”

―장관 퇴임을 곧 맞게 되는데 소회는….

너무 많은 걸 누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검사장까지 했고, 대학교수와 총장을 지낸 뒤 다시 정부에서 위원장(국가청렴위원장)을 거쳐 장관을 했다. 나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과 자손의 몫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다른 분야의 경험을 한 게 장관을 하며 남에 대한 배려를 더 하도록 만든 것 같다. 절제와 균형, 공과 사의 엄격한 구분을 항상 강조했다.”

정리=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아래는 2008년 1월 14일자 동아일보 기사◀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11일 노무현 대통령이 1일자로 시행한 특별사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진 빚을 일부 갚아 주는 성격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날 본보와의 비공식 인터뷰에서 “이번 사면 대상은 75명으로 많지 않았는데 임동원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과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유종근 전 전북지사,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이 포함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장관은 이어 “재임 중 사면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며 “대통령의 권한인 사면의 대상에 대통령 보좌진은 좀 더 많은 사람을 넣으려 하고 법무부는 법의 권위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면 대상을 줄이려 하기 때문에 조정하는 과정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철학자 칸트도 ‘사면을 잘 쓰면 굉장히 빛나지만 잘 못 쓰면 큰 불법이 된다’고 말했다”며 “(앞으로) 대통령이 스스로 사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기준을 만들어 놓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그는 검찰의 BBK 수사 결과에 대해선 “검사들이 사심 없이 성실하게 수사했다고 믿으며 검사들이 회유하고 협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위를 파악해 봤지만 문제가 없었다”며 “그래서 지난해 12월 26일 국무회의에서 법 자체의 위헌성 등을 다 거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장관은 “지휘권 발동이나 내부 감찰은 검찰총장에게 의견을 들어본 결과 우리가 신뢰하는 엘리트 검사들에 대한 좋은 방법이 아니어서 결국 특검법을 수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