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출처 : [조선데스크] ◀
◑"그놈의 헌법" 망언의 종착역◐
- 2008년 1월 17일 헌법재판소는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정치적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뒤 한 재판관은 "나중에 헌법교과서에 실릴 만큼 중요한 결정문이니 찬찬히 읽어 보라"고 했다. 그는 "재판관 9명이 일종의 소명의식을 갖고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심리하고 문장을 가다듬었다"고 말했다.
헌재의 결론은 "대통령에게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선거 중립 문제와 충돌할 때는 선거 중립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이 결론에 이르는 헌재 결정문이 무려 91쪽이나 된다.
과잉금지의 원칙, 평등성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 같은 어려운 법률적 논리 전개 때문에 작은 책 한 권 분량의 결정문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헌재 결정문 곳곳에 노 대통령이 청구해 헌재의 심판 대상이 된 '말씀'이 여과 없이 등장해 그나마 읽는 재미를 준다. 결정문 표현으로는 '청구인(노무현)의 주요 발언 내용'이다.
"한국의 지도자가 무슨 독재자의 딸이니 뭐니 이렇게 해외신문에 나면 곤란하다, 이런 얘깁니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게 좀 끔찍해요"(이상 작년 6월 2일 참평포럼 강연), "이명박씨 감세론에 절대로 속지 마세요", "제가 이명박씨 감세론, 그리 되면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완전히 골병듭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도 선거운동입니까? 자, 선거 중립을 안 지킨 겁니까?"(이상 작년 6월 8일 원광대 강연)
바로 5년 전 2월 25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라고 취임 선서를 한 대한민국 최초의 법률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이렇게 헌법과 법률을 조롱하는 듯한 문제 발언 전후에는 "꿀리지 않고~" "제가 무슨 코미디언입니까? 왜 자꾸 웃어요?" "공직사회는 언론의 밥이 되고~" 등 대통령의 품격이 묻어나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그래도 나중에 이 결정문을 공부할 법학도들을 위한 배려 덕인지, "캬, 토론 한번 하고 싶은데 그놈의 헌법이 못하게 해요"라는 참평포럼 강연 대목은 결정문에서 생략해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다.
이 결정문을 읽다 보면, 헌재가 전에 이미 노 대통령에게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다"고 선언한 적이 있는데 대통령은 왜 또다시 헌법소원까지 냈을까 의아해진다.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 3일 노 대통령은 "국민이 압도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가 선관위의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받았다. 또 이것이 비화돼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이어졌다. 2004년 5월 14일 헌재는 이 탄핵안을 기각하면서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헌법 요청에 부합할 수 있도록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구속받는다"고 명시했던 것이다.
노 대통령이 당시 이런 결정을 받고도 작년 6월 21일 헌법소원을 낸 것은 그 사이 재판관 9명 전원이 바뀌었고, 그들에게 자신이 임명장을 주었기 때문에 다른 결론이 나오리라 기대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번에도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재판관 9명이 모두 노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았지만 무려 7명이 등을 돌렸다. 노 대통령의 헌법소원 취지와 똑같이 '위헌' 의견을 낸 이는 사법시험 17회 친구인 조대현 재판관과 민변 회장을 지낸 송두환 재판관뿐이다. 아마도 '그놈의 헌법' 발언으로 상징되는 노무현씨의 비뚤어진 헌법관(憲法觀)과 품격이 재판관들의 '배신'을 몰고 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조롱당한 헌법과 헌법 정신을 바로 세우도록 작동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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