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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니....

modory 2008. 2. 24. 11:16
sogo.gif ▲이 글은 이명박 정부의 비서실장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고 한 말에 대해 이재교 인하대 법대 교수 자유주의연대 부대표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고?

실패 극복 의지 담긴 구호를 버리면
새 정부의 정체성 잃어버릴 수 있어
  
유우익 대통령실장 내정자가 신정부 합동워크숍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기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산업화기간 중 미진하거나 왜곡되었던 부분을 바로잡고 소화하는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자가 대선 기간 내내 주장했던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인수위원과 수석비서관 내정자들의 워크숍 발제를 통한 발언이니 청와대비서실 운영의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유우익 내정자는 청와대비서실을 총괄할 중책에 임명되어 이명박 대통령의 수족이 될 사람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무슨 의도로 이 같은 발언을 했는지 해괴하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는 우리가 지나온 길에 대한 올바른 판단에서 나온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은 단순한 선거구호가 아니다. 지난 두 정권에 대한 총체적 평가일 뿐만 아니라, 이명박 후보에게 과거 정권이 잃어버린 세월을 극복하라는 국민의 염원을 함축한 선거구호였다. 노무현 정권 측이 내세운 후보가 지난 10년이 '위기 극복의 10년'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명박 후보에 대하여 갖가지 의혹을 제기하였지만 대선기간 내내 여야 후보의 지지율이 요지부동이었던 것은 그러한 의혹이 있다 한들 국민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력에게 다시는 정권을 맡기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이 선거가 끝났다고 팽개쳐도 좋을 선거구호가 아닌 것이다.

유 내정자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고 한 발언은 이념논쟁을 지양하고 실용에 힘쓰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용적인 국정을 위해서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평가를 버려서는 안 된다.
과거 두 정권이 10년을 허송세월한 원인이 바로 실용을 등한시한 채 철 지난 이념에 몰입한 데에 있기 때문이다. 두 정권은 시장을 백안시하고 인위적인 분배를 앞세운 사회주의적인 이념에 매달렸다. 그 결과 세계평균에도 못 미치는 경제성장으로 소위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다른 나라가 자본과 노동력이 국경 없이 넘나드는 세계화에 적응하는 동안 우리의 좌파정권은 온갖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 현대사를 부정하기에 바빴다.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는 자학적 역사관에 빠진 결과였다. 그런가 하면 감상적인 민족지상주의에 젖어 북한 '퍼주기'에 열중한 결과 북한의 핵무장을 초래했다. 이렇게 좌파정권이 이념에 몰입하여 대한민국을 후퇴시켰다는, 그래서 10년의 세월을 허비하였다는 뼈저린 회한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다. 실용을 중시한다면 더더욱 '잃어버린 10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유일한 나라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아직 선진화는 멀다. 선진화 없이는 바람직한 통일도 없다. 감당할 능력도 없이 맞이하는 통일은 재앙일 뿐이다. 그리고 선진화는 이명박 당선자가 이미 천명한 대로 차기 정부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사명이기도 하다.

좌파정권의 '잃어버린 10년'의 역주행 속에서 선진화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평가를 뒤집으면서 역주행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아르헨티나가 되고 말 수도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부정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