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특별히 스토리가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애국심과 휴머니즘을 곁들여 내세운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그토록 충격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영화 초반 약 20분 정도 상영되는 충격적인 전투신 때문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표현했던 바로 그 장면!
기관총탄이 병사들을 꼬치 꿰듯이 뚫고 지나가고.. 폭탄이 터지면 팔 다리가 날아가며..
4월 29일 방영된 MBC PD수첩의 구성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본떴다.. 프로그램의 초반에 잔혹하고 충격적인 영상을 보여준다.. 미국의 동물보호협회인 휴메인 소사이어티가 발표한 동물학대 동영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일어서지 못하는 젖소들을 전기로 지지고 물고문을 하며 학대하는 모습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한 장면이었다.. 그 다음은 아레사 존슨의 장례식, 시체의 얼굴까지 생생하게 보도한다..
그렇게 5분 가량 잔혹한 충격을 던져주고는 그 충격을 자연스럽게 인간광우병과 연결시킨다.. 동물학대 동영상과 아레사 존슨의 죽음을 지속적으로 광우병에 연결시키고, 그 과정에서 의도적인 오역과 말실수까지 가미한다.. 앵커는 학대 받는 소를 광우병 소로 둔갑을 시키고, 자막은 “동물학대 혐의를 받은 인부들에게 물었더니”라는 말을 “현장책임자에게 왜 (광우병 의심소를 억지로 일으켜 도살하냐고) 물었더니”로 둔갑시킨다..
그 방송을 본 후 시청자들의 머리 속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프로그램 초반의 잔혹한 장면을 보면서 느꼈던 충격과 공포가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스란히 전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지키고자 촛불을 챙겨 길거리로 나간다.. PD수첩 제작진은 그런 결과를 의도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뺨 칠 대단한 편집력으로 공영방송을 신뢰하는 시청자를 기만했던 것이다..
지난 두 달간 그 방송으로 인해 비롯된 촛불집회가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다.. 광우병 괴담이 퍼지고, 미국 쇠고기가 청산가리보다도 더 무섭다고 믿는 순진한 아이들로부터 비롯된 시위는 이제 반정부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PD수첩은 자신들의 오보에 대해 그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인터넷과 언론에서 그 문제가 본격적으로 지적되니 이제 와서 해명이란 것을 한다.. 6월 24일 해명보도가 방영되었다..
정작 자신들의 오보와 왜곡에 대해서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다가 끝에 가서 마지못해 일부를 인정한다.. 그리곤 기가 막힌 한마디를 한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냐고 한다.. 도대체 그들이 가리키는 달이 무엇인가.. PD수첩은 방송에서 “아레사가 만일 인간광우병으로 최종진단이 내려지면 그녀는 미국 내에서 감염된 첫 사례가 될 것”이라 했다.. 그 말은 미국 내에서 인간광우병에 감염된 환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의심증상의 소를 샘플링하여 조사한 결과도 단 3마리만 걸렸을 뿐이다..
그 3마리도 외국에서 수입된 소일 가능성이 크다.. 도대체 무슨 달을 보라고 하는 것인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초반의 20분 전투 신이 없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4월 29일자 피디수첩 보도내용 중, 잔혹한 젖소 학대 장면과 충격적인 아레사의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사회에 광우병에 대한 공포도 그토록 증폭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젖소도 아레사도 광우병과는 관련 없었다..
결국 PD수첩은 광우병과는 상관 없는 영상으로 시청자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며 존재하지도 않은 미국 인간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대중에게 퍼뜨린 꼴이다.. 달도 없고 손가락도 없었으며, 있었던 것은 오직 그들의 기만과 비열함 뿐이었다..
시대유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