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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침 논단- 대통령 형의 성인 오락실

modory 2008. 12. 12. 17:03

★조선일보 아침논단★ 대통령 형의 성인오락실

▲ 서지문 고려대 영문과 교수

중국발 멜라민 파동을 보면서 '중국이니까' 생길 수 있는 범죄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주위에서 온통 밤사이에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들을 보고 머리가 완전히 돌아버린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돈이 사람의 목숨에 우선하는 예가 무수히 많고, 수천 년을 내려온 부패의 전통이 어떠한 범죄, 비리도 돈만 있으면 무마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준 나라에서가 아니라면 어떻게 수만, 수십 만의 어린 생명을 파괴하고 잠식하는 그런 범죄가 저질러질 수 있겠는가?

만약 이런 범죄가 일본에서 저질러졌다면 그것은 '탐욕'의 소산이 아니고 반사회적인 이상심리자의 소행이었을 것이다. 사회에 대한 오랜 원한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복수하려는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 장애)의….

금년 상반기를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 사회를 좀 연구했는데 일본에는 확실히 부패가 적다. 연일 살벌한 정치공방과 대형 수뢰, 횡령, 독직 사건으로 시청자들을 강타하는 우리나라의 TV뉴스와 달리 일본의 뉴스는 한가하고 싱겁기까지 하다. 정책대결도 침착한 발표와 반론 수준이고 상세한 날씨, 이런저런 단체나 지자체의 행사, 축제 등이 주 메뉴이다. 공무원의 독직사건이 보도되면 주인공은 하급관리이고 수뢰액은 몇십 만엔이어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한편 우습고 한편 서글펐다.

일본에는 왜 부패가 적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일본은 오랫동안 무사들이 지배하는 사회여서 '범죄'뿐 아니라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도 변명이나 애원을 해 볼 겨를도 없이 무사들에게 베어지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반면에 문치사회였던 중국과 한국에서는 '죄'와 '벌' 사이에 변명과 호소와 애원, 그리고 '뇌물공여'와 '협상'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부패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인정사정'이 통용되는 사회는 인간적이고 덜 무서운 사회지만 거기서 양분을 얻은 부패는 사회의 토양을 병들게 해서 생명이 곧게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일본에는 아직 '명예'의식이 도처에 살아있다. 개인의 명예, 가문의 명예, 단체의 명예 등. 그리고 한번 '명예'를 잃으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부패가 적다. 우리나라처럼 어떤 비리를 저지르고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해도 곧 그것이 잊혀지고 오히려 부정한 돈을 밑천으로 부활하는 사회에서는 부패가 창궐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이 대규모 알선 수뢰를 했고, 그것도 모자라 그 더러운 돈으로 성인오락실을 공동 운영했다는 소식에는 분노를 가누기 힘들다. 노 전 대통령은 5년 전 자기 형님을 '별 볼일 없는 시골양반'인데 그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청탁을 한 대우건설의 남 사장이 부패의 교사자라고 비방했고, 그 직격탄을 맞고 남 사장이 자살을 했는데도 사과는커녕 한마디 유감이나 조위의 표시조차 없었다.

그러나 노건평씨는 '별 볼일 없는 시골양반'이 아니었음이 거듭거듭 밝혀졌다. 그가 탐욕에 눈이 어두워 비리에 발을 들였을 때 그는 한 나라 대통령과 그 형의 명예라는 것을 눈곱만치라도 의식했을까. 그랬다면 그는 최소한 부정한 돈으로 서민들의 사행심에 기대어 또다시 돈을 빨아먹는 성인오락실을 생각했을 리가 없다. 또 그 성인오락실의 수익분배를 놓고 범죄 동업자와 티격태격하는 추태를 보였을 리 없다. 그는 단지 돈에 눈이 어두워 명예고 체면이고 다 내팽개친 전직 부패 세무관리였을 뿐이다. 그는 본인과 집안의 천격(賤格)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자기 동생이 대통령으로 있던 나라의 국민들에게도 모욕을 주었다. 슬프다! 대한민국. 우리는 언제나 이 뻔뻔하고 끈질긴 부패의 행진을 그만 볼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