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영상들◀/★영화 이야기

영화 워낭소리

modory 2009. 2. 1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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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기축년, 소의 해다.
시간을 12가지 동물로 나누어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세계 장악력이 미약하던 시기에 발생한 토테미즘의 영향이다.
약 3천여년 전부터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 가축이 된 소는,
12가지 동물 중 두 번째에 해당된다.
부지런하고 온순한 동물인 소는 복을 불러 오고 화를 막아주는
기운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경문화권이며 정착민족인 한국인들에게 소는,
천하의 근본인 농사짓는 일의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있었고 따라서
하늘에 제사지낼 때 바치는 가장 귀한 제물이었으며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운송수단이기도 했고, 자식들 대학 등록금이나 시집 장가보낼 때 목돈을
마련해주는 재산목록 1호였다.
또 죽어서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쇠고기가 되어 밥상에 올라왔고,
소의 가죽으로 크고 작은 북을 만들었으며, 촛불시위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지만
뼈를 고와 마시는 음식문화는 미국의 식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소가 내뱉는 한숨 이외에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는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동물이었다.
그래서 가축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도시화가 진행된 1970년대 이후 한국 영화 속에서는 소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그 이전 영화에는 소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 PIFF 메세나상을 받았고,
선댄스 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충열 감독의
[워낭소리]는 한국인의 일상과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소의 의미를 뛰어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경북 봉화마을에 살고 있는 농부 최원균(80세) 할아버지에게는
애지중지 기르는 소 한 마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의 수명은 15년 정도, 그런데 최 할아버지와 소는
40년째 동거동락 중이다.
[워낭소리]는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자식들 9남매는 모두 도시에서 살고 있고 영화 대사의 8할을 차지하는
할머니의 신세한탄 넋두리 혹은 지청구는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를 설명하는 내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할머니는 늙은 소를 팔라고 쉴새없이 요청하지만 할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잔소리는 다리를 다친 최 할아버지가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르는 게 싫어서이고,
할아버지가 그 역할을 못하면 할머니 본인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에게 해가 될까 논에 농약도 치지 않는 할아버지는,
귀도 잘 들리지 않지만 소의 워낭소리는 귀신처럼 알아듣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소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할아버지가 고삐를 잡으면
무거운 나뭇짐도 묵묵히 나른다.


[워낭소리]가 주는 감동은, 말 못하는 늙은 소와 평생을 함께 한
한 농부의 말없는 내적 교류에서 비롯된다.
다리가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할아버지는 소가 먹을 꼴을 베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낫을 들고 산으로 향한다.
소는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다.
제대로 소를 먹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요청대로
소시장에 소를 끌고 나온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서는 소를 팔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한때 500만원을 넘던 소의 값은, 이제 늙어서 고기도 질겨 맛이 없다고
1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안판다고 고개를 젓지만 그 이유가 돈이 적어서가 아니다.
소시장에 묶인 늙은 소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진다.


[워낭소리]에는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입만 열면 신세한탄을 하는 할머니와 무뚝뚝한 할아버지 그리고
평균수명을 훨씬 넘긴 채 곧 죽을 날이 다가오는 늙은 소 한 마리가 등장하는
것뿐이지만, 허구로 만들어낸 그 어떤 극영화를 능가하는
가슴 뭉클한 감동과 재미가 있다.
그것은 삶을 진솔하게 관찰한 연출자의 몫이고, 3년 동안 정성스럽게
촬영한 제작진의 공로다.


기축년, 소처럼 유유자적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소처럼 일해야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그래도 소가 갖고 있다는 좋은 기운으로 화를 물리치고
복이 가득차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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