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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서- 좌파여 금단의 아픔을 이겨내라

modory 2009. 6. 9. 07:55

중앙일보 이훈범의 시시각각 ●좌파여, 금단의 아픔을 이겨내라●

처음엔 그런 줄만 알았다. 여태껏 그리 믿었다. 모든 게 덕 없는 사람이 분수 넘치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빚어지는 사단이라 여겼다. 그 작은 그릇도 제 식구로만 채우려니 그렇게 성기고 설폈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건 그저 곁가지였다. 일년 반이 지나도록 뭐 하나 속 시원히 끊지 못하고 맺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10년 맛본 권력을 내놔야 했던 좌파의 상실감과 금단 현상이 그토록 심한 거였다. 패배를 인정하자니 손이 떨렸다. ‘도덕성’으로 무장한 좌파가 ‘부패 도당’ 우파에 패한 건 야바위였다. 반대 대신 증오가 자리 잡았다. 사사건건 시비 걸고 발목 잡은 것도 그래서였다. 대선보다 더 치열한 경선을 치른 다른 후보가 그 자리에 올랐어도 별 수 없었을 터였다.

어느 한 부분에서 나타난 증세가 아니었다.
10년 동안 뻗고 굵어진 좌파의 뿌리와 줄기가 사회 곳곳에서 몸을 떨었다.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각계의 좌파에 공급되던 젖줄이 말랐다. 예산은 깎이고 지원금은 사라졌다. 곳곳에 포진해 있던 좌파 인사들의 목에는 비수가 날아들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던 선비들은 스스로 물러났고, 그래도 아쉽던 사람들은 등 떼밀려 쫓겨났다. 끝까지 버틴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었다. 욕설과 악담이 쏟아졌다. 그중에는 선동도 있었다.

좌파 방송의 선동은 위력적이었다. 비틀리고 부풀려진 보도에 겁에 질린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자 좌파는 쾌재를 불렀다. “타도 이명박”이라는 구호가 나왔다. 컨테이너 명박산성만 넘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무정부 상태 못잖은 혼돈이 100일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자 좌파는 한순간에 동력을 잃었다. 또 다시 좌절이었다. 도덕성 그 자체던 전임 대통령의 수뢰 혐의는 좌파를 절망에 몰아넣었다. 모처럼 기가 산 우파는 토끼몰이에 신바람을 냈다.

전임 대통령의 투신은 울고 싶던 좌파의 뺨을 갈겼다. 그는 원망 말라고 했지만 원망이 증오로 바뀌고 저주로 변한 건 필연이었다. 우파 실정의 구원투수로 영광스러운 좌파 정권의 서막을 열었던 전임자가 맨 앞에 섰다. 독재니 민주주의 위기니 자신의 과거 레퍼토리를 모조리 쏟아냈다. 독설은 독설을 낳았다. 늙은이들은 주름진 입을, 철부지들은 젖내 나는 입을 놀렸다. 그중에는 언론도 있었다. 생전에 고인에게 정치적 금치산 선고를 내렸던 좌파 신문·방송들은 하루 아침에 말을 바꿨다. 전 대통령은 순교자가 되고 현 대통령은 살인마가 됐다. 좌파는 여세를 몰아 6월 대반격에 나설 기세다. 그들은 스스로 장악하지 못한 정치에 기대지 않는다. 그들의 신뢰를 구걸하는 제1야당은 의사당 대신 거리에 나가려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있다. 어떤 좌파 목사는 “제2의 6월 항쟁으로 리명박을 내치자”는 글을 남기고 목을 맸다. 저주받은 이 땅은 또 한 차례 카오스로 빠져들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금단의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 정권을 빼앗겼다고 세상이 끝난 건 아니다. 선거로 잃은 권력을 거리에서 되찾아올 수는 없는 일이다. 절망의 몸짓이 순간의 울분을 달래줄 순 있어도 권력에서는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체포돼 30년형을 선고 받았던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뢰는 동료 좌파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과거 좌파는 소명이었는데 지금은 직업이 됐다.” 좌파는 소명으로 돌아와야 한다. 각자 제자리에서 소임에 충실하며 좌파의 가치를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주기적인 경제위기와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를 극복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좌파의 가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착오적 반정부 투쟁으론 그 일을 해낼 수 없다. 기획 세력으로 숨어 대한민국까지 부정하는 모습은 좌파의 미래마저 부정하는 짓이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