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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강천석 칼럼 - 2009년 6월 11일

modory 2009. 6. 11. 09:12

조선일보 강천석 칼럼 노무현은 이명박을 낳고 이명박은 다시…

2009.06.10

"노무현 막다른 곳에 몰아넣은 좌파의 위선적(僞善的) 눈물
이명박 정부 1년4개월이 불러모은 시청 앞 군중을 보라"

좌파 시민단체와 좌파 정당 그리고 여기 올라탄 민주당이 10일 서울광장에서 '6월항쟁 계승·민주 회복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정치집회가 아니라 '문화제(文化祭)'라서 집회 신고가 필요 없다는 야릇한 논리를 곁들여 불법을 밀어붙였다. 우파 단체 자유총연맹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승용차 요일제 자율 참여 캠페인'을 열겠다며 좌파보다 먼저, 또 좌파와 달리 합법적 신고 절차까지 마쳤다. 좌파 집회에 대한 대항 집회다.

그러나 '6월항쟁 계승·민주 회복 범국민대회'란 울긋불긋한 깃발 곁에 꽂힌 '승용차 요일제 자율 참여 캠페인' 팻말은 초라하기도 하거니와 생뚱맞기도 했다. 박수부대 동원 능력은 더 큰 차이가 난다. 좌파 쪽은 전국 60개 대학 3000명 교수·종교계·문화계 시국 선언으로 박자를 맞췄다. 여기에 우파 교수들과 보수 성향 종교인들이 맞불을 놓으려 했지만 '노무현 바람'을 탄 기세를 누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좌파의 전공 과목이 원래 '선전' '선동' '조직'이다. '성공한 혁명'이든 '실패한 혁명'이든 모든 혁명운동에서 좌파는 '선전' '선동' '조직' 과목만은 '수(秀)'를 놓치지 않았다. 북한의 지도자가 아버지 권력을 상속 재산으로 물려받기 전 '선전·선동 비서'와 '조직 비서' 자리를 거친 것도 같은 배경이다.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베트남 공산화 과정부터 50년대 한국의 해방정국, 60년대 일본 안보 투쟁, 프랑스 5월혁명 등등 역사의 결정적 국면에서 우파의 선전·선동 마이크는 번번이 고장이 나거나 상태 불량(不良)으로 좌파에 밀리기만 했다.

그렇다고 선전·선동·조직에 발군의 역량을 갖춘 좌파가 언제나 역사 속의 승자가 되지는 못했다.
좌파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말과 행동 속에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들어 있다. 인류, 제3세계 인민, 같은 국민, 동네 이웃, 친·인척, 처자식 순(順)으로, 다시 말해 먼 데 있는 걸 가까이 있는 것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다는 식이 좌파의 입에 밴 말버릇이다. 그 원조(元祖)가 '만국(萬國)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던 공산당 선언 속의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자기 집 가정부에겐 너무 파렴치하고 몰인정했지만 아내와 딸에겐 더할 나위 없는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마르크스는 이런 인간 본성(本性)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숨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르크스라는 뛰어난 선배와 달리 못난 후배들은 그럴듯한 말로 자기의 본모습과 욕심을 숨겨 왔다. 좌파들이 그들 입에서 나온 멋진 말을 몸으로 그대로 행동에 옮겼더라면 우파들은 모두 역사의 벼랑에 떠밀려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좌파들은 말과 행동이 크게 어긋나거나 정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이 좌파의 위선(僞善) 덕분에 말이 서툴고 행동에 굼뜬 우파들이 발 디딜 곳을 마련해 생존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제 서울광장에서 그 좌파의 위선과 다시 마주했다. '6월항쟁 계승·민주 회복 범국민대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 대회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민노당·진보신당·민노총·좌파 신문·좌파 방송 모두가 상복(喪服)을 입고 '이명박 정권과 보수 언론에 타살당한' 노 전 대통령을 애도하고 있다. 슬프디 슬픈 그들 얼굴만 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던 바로 그 순간까지 "구차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다" "진정한 반성은 없고 어떻게든 궁지를 모면하려는 안간힘만 느껴진다" "(청와대 안의 돈거래가)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그의) 위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해 말문이 막힌다"며 궁박한 처지의 사람을 막다른 곳으로 몰고 또 몰았던 인간들이 바로 그들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다. 그들 중의 누구는 "그(노 전 대통령)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落照)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등을 바위 아래로 떠밀다시피 했다.

자신의 귀에 닳고 닳은 보수 언론의 그렇고 그런 비판과 5년 내내 같은 편이라며 어깨동무하고 온갖 귀엣말을 함께 나눴던 좌파 언론이 하루아침에 매몰차게 돌아서서 비수처럼 찔러대던 비판 가운데 어느 편이 노 전 대통령에게 더 견디기 힘들었을까. 자기들에게 흙탕물이 튈까 해서 그렇게 노 전 대통령과의 사이에 금을 그으려 했던 그들 뺨 위로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고 있다. 참회의 눈물일까. 눈물은 빨리 마르고, 남에게 보여주려고 흘리는 눈물은 더 빨리 마르는 법이다.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은 노무현 정권 5년 세월이었다. 그 세월 국민 가슴속에 쌓여 갔던 한숨과 분노가 '성공한 샐러리맨'을 대통령 자리로 밀어올렸다. 6월 10일 서울광장을 메운 군중의 절반은 이명박 정권 1년4개월 세월이 불러모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무현 정권 5년 세월이 '샐러리맨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듯이 이 많은 군중을 시청 앞으로 불러모은 이명박 정권 1년4개월에 앞으로 다시 3년 세월이 더해지면 무슨 역사를 새로 쓰게 될 것인가. 이래서 역사는 돌고, 이래서 역사가 무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