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모음♠/♧글속 그림. 그림속에 글

이광두 형의 글 - 고희를 맞아 전방을 찾은 이야기

modory 2009. 8. 2. 16:06
이 글은 한 시대를 함께 호흡했던 이광두 형이 고희 잔치 대신 아이들과 함께 군대 시절을보냈던 전방을 찾아보고 쓴 글이다

  

        #1 / DMZ 와 古稀

 
나는 지금  최전선 DMZ 철망 앞에 서 있다. 
50여년의 歲月을 꺾어낸 채 그 옛날 내가 섰던 그 兵營, 그 高地 DMZ의 
철망과 초소 앞에 서 있다.
이 글을 접하는 당신이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零下 30度의 酷寒,
暴雪, 그리움, 무서움의 고통을, 그리고 民族 相爭의 피 토하는 대남 방송의 
웅웅거림 앞에 섰던 그 자리에 지금 나는 이렇게  서 있다.
그 때 태어 나지도 않았던 나의 血肉, 나의 家族들이 내 옆에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진 않은 채 묵묵히 서 있다.
 盛夏의 綠陰에 쌓여 寂寞하기만 한 이 DMZ의 철망 앞에서 말이다.  
 끝내 古稀잔치를 辭讓했다.
  대신에 나는 모든 나의 血肉과 함께 半 百年의 歲月을 거슬러 올라가
 少年 같은 애띤 兵士의 모습으로, 내가 복무하던 최전방 휴전선 DMZ를
 찾아 그 앞에 서 있는거다.
 한치의 변함이 없는 그 山川. 자식을 낳은 마흔이 다 된 나의 딸 내외,
 외손녀, 그리고 할멈,  家族이라야 이 모두가 全部이다.
 아래에 있는 內容은 半 百年, 그 이전의 歲月을 알 턱이 없는  
딸의 블르그에서 쓰여진 글과 사진의 일부를 이곳에 그대로 옮겼음을 
附記해 둔다.<斗>

 <국군 초소가  서 있는 철책의 모습과 북한 지역의 험준한 산세>

 

        #2 /  1100 高地로 가는 길

 

         제 4 땅굴을 떠나 우리는 을지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라는 곳이  대부분 山 頂上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기에

         어느정도 높은 지대일것이라 당연 생각하고 차를 몰았으나 

         생각외로 지대가 너무 높고 점점 가팔라지는 급경사에

         나의 얼굴은 굳어져가고 차안은  긴장감에 침묵으로 조용하기만 했다.

         차체가 점점 뒤로 누워지더니 급기야 으아 ~~ 하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살면서 이리 가파른 급경사를 차를 몰고 올라가본 적은 처음인듯 싶었다.

         돌아가려 해도 좁은 산도로에 유턴할 장소라곤 없다.

         이판 사판 무조건 올라가야 된다.

 

          그런데 올라가면서 걱정이 들었다  이리 가파른 경사길을 또 어떻게

          내려 올까???? ...

          이젠 죽었다 ! <딸의 블르그에서 발췌>

 

         

< 북측에서 파온 땅굴까지 남측에서 逆으로 파내려간  땅굴 내부 모습>

 

 

         이즘에서 愛馬  자랑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제네시스의 파워는 정말 대단하다. 참으로 아슬아슬 급경사의  1100高地를

         거뜬히 올라서는 제네시스는 지친 기색이 전연 없다.

 

         차를 새로 구입한 후 이번 旅行을 통해 제네시스의 탁월함을 몸소 체험했다.

         안락함과 정숙성, 파워력은 단연 최고다 !   <딸의 블르그에서 발췌>

 

         

 

                      <DMZ에 오르기 앞서 북한에서 파 내려오던 제4땅굴 앞에서  어울리지 않는

                 거수 경례 모습>

 

 

                 # 3 /  제 4 땅굴

 

            高地에 올라서니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려 다리가 후들했다.

           몇몇 군인들이 보이고 철책을 경계로 북한 땅이 보인다.

           나는 긴장됨이 얼굴에  역력하나 군인들의 얼굴은 여유롭기 그지 없었다.

           철책 앞에서니 그야말로 코앞에 북한 땅이 펼쳐져 있다.

           전망대 건물안에 들어가니  비디오를 보여주어 이곳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딸의 블르그에서 발췌>

 

 

                         

 

                            

 

 

                         #4 /  0035788 ! 

 

                  내 靑春의 상징인 고유 번호 ,  軍番 !

 

                 50년전 애비의 모습이다.  너무 놀랐겠지.  형무소의 囚人같은 이 行色,

                 零下 30度의 기막힌 추위를 이겨내어야 하기에  이 지저분한 솜옷은

                 오히려 고맙기만 하고 , 오른쪽 가슴에 이름표,  왼쪽 가슴에 노란 세모의

                 비표.  검은 색 장부에 분필로  쓰여진 나의 軍番 . 

                

                 어느 누구와도, 그리고 무었과도  바꿀 수 없는 이 값진 내 삶의 行蹟,

                 DMZ철망 앞에 서서  가슴 위로 차오르는 눈속을 헤집으며 저절로

                 뜀박질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이 嚴冬雪寒.  차라리 밤 별이

                 따사하게만 느껴졌던 DMZ 철책 앞에 지금 이렇게 서 있다.

                 50년을 달려온 내가  말이다.

 

                        平生을 안고 갈  나의 청춘의 상징 번호,  0035788 !

                 더 없이 소중한 내  人生의 資産,  0035788 !  <斗>

                       

                           <초소 전망대 계단 벽에 붙여 둔 전시물 앞에서 촬영>

 

 

             며칠전 폭우로 인해 북한은 심각한 피해를 입어 식량난은 더 악화되어

            있다 했고 실제로 선녀탕이라는 주변이 뭉그러져 흙탕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선명히 두눈에 들어왔다.

            일주일 전 視野가 맑은 날, 우리측이 촬영해 놓은 畵面에는 북한군들이

            빨래를 하고 쉬는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날씨가 快晴하면 금강산 봉우리들까지도 선명히 보인다 했는데

            아쉽게도 그날은 시야가 그리 맑은 편이 아니라 비디오 화면으로

            대신해야 했다.  <딸의 블르그에서 발췌>>

 

 

<철조망 앞은 비무장지대,  그리고 그 앞은 북한땅>

 

       철책 사이를 순회하는 우리 군인들이 보였다.

       바람소리만 들릴뿐 이렇게 고요하기만 한 이곳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우리 초소가 보이고 그 앞쪽에 펼쳐져 있는 산들이 모두 북쪽이다.

        <딸의 블르그에서 발췌>

 

<철책에서 뒤돌아본 우리 남쪽의 평화로운 모습 / 고지 턱 밑에 까지 민가가 보인다.>

 

        위의 사진은 는 반대쪽 우리 남쪽의 모습이다 .

        철책 하나를 두고 분명하게 선이 그어져 있다.

        남 과 북 으로 . . .

        애국심이라는 거창한 용어는 접어 두고서라도 어쩐지 맘이  무겁고,

        슬프며 뭉클해졌다.

        통일이 되었으면...  정말 통일이 되었으면 ....

        새삼 통일에 대한  나의 염원이 간절해지기만 하다.

        <딸의 블르그에서 발췌>

  

 

    

        다시 고지에서 내려갈 급 경사길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해진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반대쪽 다른 길이다.

        다행히 완만한 경사길이라  가슴을 쓸어 내렸다.

        조용하던 차안은 이내 풀어진 긴장감에 수다로 시끄러워졌다.

        검문을 하는 군인 아저씨들에게 충성!하며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탁 트인  視野와 바람이 있는 곳이었지만 내내 맘이 먹먹했던

        그곳을 떠났다 . <딸의 블르그에서 발췌>

 

 # 5 /  코스모스 소포

 

         鄭 詩人 !

        그는 東亞日報 新春文藝  詩部門 當選者이다.

        나와  한 내무반에서  苦樂을 함께 했던  애띤 20대 詩人,

        내무반에서 敎育 도중 나의 노트에  <李 兵士에게 주노라 .>

        하며  써 준 그의 當選  詩作을 더듬더듬 기억하며 옮겨본다.

 

       

           병사의 새벽이 아닐지라도 / 당신은 우리네 가슴속에 한번쯤 /

           울렸어야 할 쟁쟁한  새벽의 음성 / 밤의 이야기가 맺힌 / 이슬들을

           거두며 / 열리어 오는  하늘 밑 /

 

           금방 발화하는 / 꽃의 심장 한복판에서 /핏물이 소용도는 육성으로 /

           고여  오는 곳 / 기적을 보듯이 그런 꽃을 보고 있노라면 / 왁자히

           달려가는 내가 되고 말터인데...<중략>

                    - 최전방 한 내무반의 룸 메이트인 鄭詩人의 新春文藝

                       당선작 중에서

                

 

           <아,  더 기억할 수가 없다.  50년전 그가 나에게 넘겨준  그의 詩句를

         말이다.  이쯤 해 두자.>    <斗>

      

         나를  은밀히 불러  나에게  보여준 고향에서 온 그의 소포 상자 !

         함께 상자를 여는 순간   코스모스만이 가득했던 그 戀書 한 상자.

         멋 있던 친구,  지금쯤  그 코스모스 戀人은 어쩜 할멈이 되었겠지?

         코스모스  여인으로 남아, 일생의 伴侶者가  되었을까?

         궁금하다. <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