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6
작년 4월 29일 방영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제작진이 진실을 왜곡 조작한 실상을 처음으로
폭로했던 PD수첩 번역자 정지민(27)씨가 당시의 왜곡 진상과 지난 1년 겪은 일을 정리한 책을 10월 초 출간한다고 한다. 책 머리말에서
정씨는 "(PD수첩에는) 의도가 없이는 불가능할 양적·질적 오류가 있었다"며 "제작진이 자의적으로 어떤 오역(誤譯)을 했으며, 사실관계가 어떤
식으로 왜곡됐고, 자료 선택 과정에서 해선 안 되는 취사선택을 어떻게 했는지 낱낱이 기록했다"고 밝혔다.
진실을 진실대로 전하겠다는
정지민씨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순진한 어린 학생부터 주부까지 수많은 국민의 등을 떠밀어 거리로 내몰았던 PD수첩 광우병 선동 진상은 영영 어둠
속에 묻혀버렸을 것이다. PD수첩 제작에 공동번역자로 참여했던 그는 작년 6월 25일 "번역·감수 과정에서 '주저앉는 소를 광우병 소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거듭 말했지만 제작진이 무시했다"고 진실을 밝혔다. 그러면서 PD수첩측에 "(진실을 왜곡한) 제작 의도와 편집 목적을 깨끗이
인정하라"고 그들의 양심선언을 재촉했다. 정씨의 고발이 PD수첩의 의도적 조작을 드러내고 국민이 광우병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 반전(反轉)
계기를 만들었다.
정씨는 피라미드 구조로 돼 있는 방송사 프로그램 제작의 위계(位階)에서 사실상 맨 아래에 속하는 공동번역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정씨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조직의 폭압 아래서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보통 용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씨는 그늘에 숨지 않고 자기 이름을 당당히 밝히며 진실을 알렸고 그 진실은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그러는 동안 PD를 비롯한
왜곡 주동자들은 끝까지 비겁하게 거대 방송의 우산 아래서 익명(匿名) 속에 숨어 있었다. "청와대에서 돈 받았느냐" "보수의 앞잡이냐"는
밀려드는 협박 앞에서 젊은 그가 당했을 정신적 고통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정씨는 그 후 1년 3개월 동안 유학도 미룬 채
검찰에 참고인으로 불려다니고 재판이 열리면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씨는 "사실과 실명(實名)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런 정씨의
신념과 용기가 PD수첩의 왜곡을 벗기고 우리 사회를 광우병의 미망(迷妄)에서 구출해냈다. 그는 책에서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데는 어떤
거창한 선의(善意)도 필요 없다. 인간으로서 갖는 기본적 자존심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정씨가 보여준 진실의 힘과 용기의 힘, 젊음의
힘이야말로 우리나라를 21세기로 밀고 나갈 진정한 동력(動力)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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