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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박지원의 조부는 정말 남노당원인가?

modory 2010. 2. 1. 19:55

● 박지원 의원의 좌익 가족사  ●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의 공식적인 후계자이다. 그리고 각종 의회 활동에 
뛰어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어, 그의 존재는 싫든 좋든 
국민의 입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러나 박지원 의원이, 남로당 박헌영의 지령을 받고 경향신문의 
전신(前身)인 정판사 출판사에서 위조지폐를 찍어 공산당 활동 자금을 
댄 정판사 사장 박낙종의 손자라는 것은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정판사 사건은 1945년 10월 20일부터 6회에 걸쳐 조선정판사 사장 
박낙종(朴洛鍾 ) 등 조선공산당원 7명이 남한에 공산정권 수립을 위하여 
당의 자금 및 선전활동비를 조달하고 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위조지폐를 
발행한 사건이다.
1945년 10월 20일 서울시 소공동 74번지에 있는 근택빌딩 내 조선정판사 
사장실에서 사장 박낙종, 서무과장 송언필, 재무과장 박정상, 기술과장 김창선, 
평판기술공 정명환, 창고계주임 박창근 등이 비밀리에 모여 위조지폐를 인쇄, 
공산당에 제공할 것을 결의하였다 .
이들은 여섯 차례에 걸쳐 위조지폐 1,200만 원을 위조하여 이관술에게 
제공하였고, 이는 공산당의 활동비로 사용되었다. 
1946년 5월 4-5일 중부경찰서(당시 본정경찰서) 형사대가 이재원 등 일당 7명을 
체포하였다. 이어 그들의 자백에 의하여 5월 7일 공산당원 16명 중 간부 3명을 
제외한 14명을 체포하였다.
공산당 측에서는 5월 17일 성명을 발표하여 구속된 정판사 직원 14명을 
공산당원이 아니라고 변명하였다. 
30여 회의 공판에서 공산당은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과 검사들을 협박하고 
테러단까지 동원하여 공판정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아마 이 장면에서 국민여러분들은 지금 민노당이나 민노총 소속원들이 
법원에서 떼법을 쓰면서 난장판을 치고 있는 상황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10여 명에 달하는 좌익 변호사들의 재판 기피로 폐정까지 연출하였다. 
11월 28일의 선고공판에서 박낙종, 이관술, 송언필, 김창선 등 주범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들에는 10-15년 형이 선고되었다.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다. 좌익변호사 단체인 민변과 좌익판사들로 이루어진 
우리법연구회가 있다.) 
좌익들은 전쟁 직전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폭력을 사용하였지만, 
그러나 6.25가 터지자, 일제히 사형이 집행된다.
김일성의 남침은 분명 비극적 침략이었고, 침략한 적들과 내통할 내부의 
적(敵)을 처단하고자 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 박지원의 조부 박낙종은 목포교도소에서 사형을 당한다. 
박지원은 지금 목포 지역 국회의원이다. 그는 진도가 고향이었고, 
그 일가(一家) 대부분 좌익이었다.
그리고 그 박지원은 조부 박낙종이 사형당한 목포에서 국회의원이 되어 열심히 
친북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자, 그러한 박지원을 우리는 어떻게 판단하여야 하는가. 
국민여러분, 아니 박지원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목포시민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나는 이를 공평하게 세상에 알리고, 나머지는 목포시민 여러분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길 뿐이다.
정재학 (반국가척결 국민연합 사무총장, 시인정신작가회 회장, 
ptimes 논설위원, 전남자유교조 위원장, 자유지성 300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