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최고의 드라마작가’로 김영현(46)·박상연(40) 작가가 꼽혔다. 본지가 드라마PD·대중문화평론가 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배우 캐스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파워가 막강하고, 드라마 경쟁력의 핵이 된 ‘작가’를 알아보자는 취지에서였다.
동성애·치매 등 시대의 이슈를 선도적으로 표현해 온 ‘노장’ 김수현(69), 사람들의 상처를 들추고 치유하는 데 탁월한 노희경(46) 작가가 그 뒤를 이었다.
젊은 취향의 ‘트렌드 세터’ 김은숙 작가, 홍정은·미란 작가 등도 순위에 올랐다. <관계기사 27면>
◆김영현·박상연, 사극의 새 지평=‘선덕여왕’과 ‘뿌리 깊은 나무’의 산파인 김영현·박상연 작가. 두 작가는 한국 드라마에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에서도 집단창작이 가능함을, 그것도 대작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미국 드라마와 유사한 작업방식이다.
둘은 2007년 ‘히트’로 첫 호흡을 맞췄다. 당시 김 작가는 ‘대장금’으로 이름을 알렸고, 박 작가는 시나리오작가로 입지를 다진 상황이었지만 아직 최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둘이 손을 잡자 상황은 달라졌다.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를 잇따라 히트시켰다.
둘의 출발은 달랐다. 김 작가는 ‘사랑의 스튜디오’ 같은 예능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일하다 드라마로 방향을 틀었고, 박 작가는 소설로 등단해 영화 ‘화려한 휴가’ ‘고지전’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사극임에도 현대적 느낌이 물씬한 이들의 작품은 두 작가의 서로 다른 이력이 화학작용을 일으킨 덕분에 나왔다. ‘조선왕조실록’부터 전문 논문까지 숱한 자료를 섭렵하는 이들은 성실함 덕분에 작품의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은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하고, 그 말을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해 왔다. “뚜렷한 주제의식과 명확한 캐릭터로 당대의 이슈를 가장 잘 녹여낸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김수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간의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다. 비교할 만한,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다.” 이외에 김수현을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그녀를 ‘최고의 작가’로 뽑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을 했다. ‘목욕탕집 남자들’ 같은 유쾌한 이야기부터 ‘인생은 아름다워’ ‘천일의 약속’ 등 삶의 고통을 응시하는 문제작까지 그의 ‘어젠다 세팅’ 능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김 작가는 무엇보다 ‘언어, 문체의 마이스터’다. 스스로 “내 작품의 말투를 고치라는 건 가수에게 다른 목소리로 노래하라는 것”이라고 단언했을 정도다. 명작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젊은 작가보다 더 파란을 불러일으키는 최근 행보를 봤을 때 아직 최고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는 평도 있었다.
◆노희경의 작가주의=1995년 ‘세리와 수지’로 데뷔한 노희경 작가는 ‘사람과 상처’에 방점을 찍어 왔다. 초라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삶을 응시하며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대중성은 다소 떨어지나 누구보다 두터운 매니어층을 확보해 왔다. 정덕현 드라마 평론가는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노 작가는 평소 “사실 강렬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 삶의 많은 질문이 녹아들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해 왔다. 지상파 방송의 한 PD는 “팔리기 위한 글이 아닌,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