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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가 온다 -2012.0830 조선일보

modory 2012. 8. 31. 09:20

막장 드라마가 돌아왔다.

남편 죽이는 등 자극적 소재, 불륜 다룬 단막극 '내가…'는 "일본 성인영화 같다" 혹평
상반기엔 없었던 막장 코드 시청률 높이려 재등장한 듯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막장 드라마가 돌아왔다.

올 상반기 인기를 끌었던 '해를 품은 달' '적도의 남자' '추적자' '유령' 같은 '웰메이드 장르 드라마'들이 종영되자 자극적 소재와 억지 설정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막장 드라마가 다시 브라운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SBS '다섯 손가락'과 MBC '메이퀸'이 대표적이다. KBS '드라마 스페셜'도 최근 불륜 코드의 단막극을 방영했다.

지난 18일부터 방영된 SBS 주말 드라마 '다섯 손가락'은 '아내의 유혹(2008)' '천사의 유혹(2009)' 등으로 막장 논란을 일으킨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다. 악기를 만드는 그룹의 후계자를 놓고 배다른 형제간 갈등, 이를 둘러싼 가족 간 암투를 다룬다. 극명한 선악 구도와 출생 비밀 등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 설정이다.

지난 25·26일에는 사생아를 그룹 후계자로 지목한 남편(조민기)과 몸싸움을 벌이던 채영랑(채시라)이 때마침 일어난 화재 현장에서 머리 부상으로 뇌진탕을 일으킨 남편을 외면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조선소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야망, 배신, 복수 등을 그린 MBC '메이퀸'도 첫회부터 막장 설정으로 시작했다. 장도현(이덕화)은 후배의 아내 이금희(양미경)를 차지하기 위해 후배를 배신, 살인하고 그 딸까지 버린다.

명품 단막극을 지향했던 KBS '드라마 스페셜'은 지난 26일 병원을 배경으로 20대 청년과 말기 암 환자인 유부녀의 불륜을 다룬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방영했다. 두 주인공은 개연성 없는 사랑에 빠지고, 성적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일본 성인영화에나 등장할 만한 소재"라는 혹평이 많다.

심지어 '청정드라마'를 표방했던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조차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관계가 진전되는 계기로 미성년자 성폭행 미수 사건이라는 막장 설정을 집어넣었다. 남자 주인공이 고교생 여자 주인공을 성폭행당할 뻔한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둘의 사랑이 싹튼다는 내용이다. 한 지상파 PD는 "아무리 이야기를 쉽고 자극적으로 하는 게 유행이라 해도 인물 관계에 중요한 계기가 되는 설정을 성폭행 미수로 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막장 논란이 일고 있는 SBS 주말드라마‘다섯 손가락’의 한 장면. 극 중 채영랑(채시라)은 화재 속에서 뇌진탕을 일으킨 남편을 일부러 구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왼쪽₩TV화면 캡쳐). MBC 주말드라마‘메이퀸’에서 여 주인공 천해주(김유정)가 빚을 받아내려 집에 들이닥친 조폭들에게 끌려가고 있다(오른쪽). /SBS, MBC 제공

이들 프로그램의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 등에는 "세상의 모든 악을 모아놓은 드라마. 정신건강에 해로워서 이젠 끝입니다"('다섯 손가락') "구역질 나는 드라마"('내가 가장 예뻤을 때') "욕하고 때리는 거 자제 좀…"('메이퀸')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막장 드라마가 다시 등장한 이유는 웰메이드 드라마를 통해 어렵게 쌓아 올린 시청률을 손쉽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막장 스타일은 일급 작가들을 동원해 공들인 대본보다 상대적으로 싸 제작비가 적게 든다"며 "상반기동안 지속됐던 높은 드라마 시청률을 싸고 쉽게 유지하려는 방송사·제작사의 안일한 태도 때문에 이런 드라마가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방송사들이 주중 미니시리즈에서는 다양한 장르로 실험을 하며 시청률 하락 위험을 감수하는 한편, 주말에는 안전하게 막장 드라마로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며 "이전에 막장 드라마를 쓴 작가들은 손쉽게 시청자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막장 코드를 끊임없이 자기 복제하고 있다"고 했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PD는 "판타지물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정극이 들어오는 것처럼 트렌디 드라마, 사회극, 판타지물 등이 상반기를 휩쓴 자리에 일종의 반작용으로 막장 드라마가 들어선 것"이라고 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올 상반기에는 힘있는 화제 작품들이 많아 막장 코드가 설 자리가 없었는데, 최근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막장 드라마의 자극적 강도도 세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