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입력 : 2015.11.24 김한수 종교전문 기자
[전문기자 칼럼] 종교인들, 부상 경찰은 위문 안 하나
"백남기님을 포함한 부상당한 모든 분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지난주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조계사로 도피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요청한 중재 문제를 논의한 긴급회의를
끝내고 가진 기자회견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2015년 11월 이날 회의에서는 한 위원장의 중재 요청에 대해서는 즉답을 주지 못했다. 대신 화쟁위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의견, 종교단체로서의 자비행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
모두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들"이라고 했다.
화쟁위가 오늘(24일) 회의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날 발표문에서는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으려 애쓴 흔적은 역력했다. 그래서 기자는 화쟁위 발표 중 "부상당한 모든 분" 중에는 이번 시위 과정에서
다친 경찰들도 포함돼 있다고 믿고 싶다.
이 문장이 눈에 띈 것은 지난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와 정의평화위원장 유흥식 주교가 서울대병원으로 백남기씨를 위로 방문한 장면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백씨는 지난 14일 시위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뇌수술을
받고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종교 지도자로서 천주교 신자인 백씨 병문안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남는다. 폭력이 난무한 이날 시위에서는 경찰도 113명이 부상했고 이 중 2명은 아직 입원 중이라고
한다. 물론 백씨와 경찰의 부상 경중(輕重)은 다르다. 그걸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백씨와 부상한 경찰 모두 우리 사회 갈등의 피해자이다. 종교 지도자들이 백씨뿐 아니라 입원 중인 경찰들도 방문했다면
어땠을까. 김 대주교는 백씨 병실을 찾은 자리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고 말했다. 이 언급은 진압 경찰에 대한 시위대의 시위 방식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김 대주교 등이
부상 경찰도 찾아 위로하고 손이라도 잡아줬다면 생명 존중에 대한 그 발언의 울림은 더욱 컸으리라 생각한다.
기자의 이메일 수신함에는 늘 종교 단체들이 발표한 각종 성명이 수북하게 쌓인다. 최근의 주제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다. 내용은 한결같다. 진보좌파 단체들은 반대, 보수우파 단체들은 찬성이다. 지난 10여년을 되돌아봐도 종교계 역시 좌파 단체들은 이라크전 참전, 4대강 사업 등에 줄곧 반대했다. 반면 종교계 보수우파 단체들은 이 사안들에 찬성해왔다. 돌이켜보면 종교가 이 갈등들에 의견을 내서 평화롭고 지혜롭게 해결되기보다는 오히려 신자들마저 두 쪽으로 갈라지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원로가 점점 사라져 간다고 한다. 종교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종교인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다. 갈등의 한 당사자가 되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서 양쪽의 주장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손을 맞잡아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과 평화를 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기대이다. 작년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통 앞에서
중립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방한 기간 내내 국내의 갈등 상황에 대해 명시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든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이 풍진세상● > ★뉴스모자이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희호에 대해 - 모셔온 글 (0) | 2016.02.18 |
---|---|
[스크랩] 이희호의 전 남편은 누구인가? ... 퍼온글 (0) | 2016.02.18 |
양의사들의 밥그릇 싸움 (0) | 2015.10.20 |
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고영주 이사장 발언 - 조선일보 2015.10.07 03:00 (0) | 2015.10.07 |
2015년 9월 4일 오전 06:23 (0) | 2015.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