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어머니, 가신 곳 얼마나 좋으시기에 / 남승욱
임종을 맞이하기까지 암 환자들은 다섯 단계의 심리 상태를 거친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여기까지는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환자의 가족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는 건 잘 모른다. 암 진단 사실을 알게 되면 일단 환자와 함께 한 번 죽는다. 자기가 죽을 것도 아니면서 부정과 분노의 감정에 빠져든다. 이어지는 건 자책이다. 왜 나는 의사가 되지 못했을까 머리를 쥐어뜯는다. 벽에 머리를 박다 보면 생각이 미친다. 비록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주변에 아는 의사는 몇 명 있지 않은가. 떠오르는 대로 전화를 돌린다.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러는 건데 개중에는 이런 대꾸 하는 인간이 꼭 하나씩 있다. "사정은 알겠는데 안과에 전화해서 대장암 얘기를 묻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야박한 놈. 누가 몰라서 그랬겠냐. 보통 처음 찾는 게 녹즙이다. 민간요법 중 대표적인 것인데 채소를 간 시퍼런 즙을 하루 몇 차례 들이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병증이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 며칠 마시다 그만둔다. 환자에게 타협의 시기가 올 때쯤 가족들은 슬슬 둔감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분노-부정-자책-둔감의 순이다. 그때는 모른다.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된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어머니가 벗어놓은 그림자만 남아 있다
저승으로 거처를 옮기신 지 2년인데
서울특별시 강서구청장이 보낸
체납주민세 납부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화곡동 어디 자식들 몰래 살아 계신가 싶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 (정희성 '흔적')
많이, 그립다.
남승욱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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