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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서늘한 점심상 외

modory 2016. 4. 1. 16:02

서늘한 점심상 / 허수경

 

잠깐, 광화문 어디쯤에서 만나 밥을 먹는다

게장백반이나 소꼬리국밥이나 하다못해 자장면이라도

무얼 먹어도 아픈 저 점심상

 

넌 왜 날 버렸니? 내가 언제 널?

살아가는 게, 살아내는 게 상처였지, 별달리 상처될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떠나가볼까,

캐나다? 계곡? 나무집? 안데스의 단풍숲?

모든 관계는 비통하다, 지그시 목을 누르며

밥을 삼킨다

이제 나에게는 안 오지? 너한테는 잘 해줄 수가

없을 것 같아, 가까이할 수 없는 인간들끼리

가까이하는 일도 큰 죄야, 심지어 죄라구?

 

너는 다시 어딘가에서 넥타이를 반쯤 풀며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머리를 누르고

나는 어디, 부모 친척 없는 곳으로 가볼까?

그때, 넌 왜 내게 왔지?

 

, 왜라고 물었니?

C'est la vie, 이 나쁜 것들아!

 

, 어디 도시의 그늘진 골목에 가서

비통하게 머리를 벽에 찧으며......

 

다시 간다

 

◆ 동그라미 / 허수경

 

저 상추밭 후드득 물 듣는 잎 아래 작은 달팽이 비 긋고 있네, 움츠러든 작은 몸 속에 든 적막, 후드득 물 듣는 소리, 누군가 달팽이에게 말을 좀 걸어주오, 빗장을 걸듯 말을 걸어, 달팽이를 어느 어수선한 집 안으로 들여보내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