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늘한 점심상 / 허수경 잠깐, 광화문 어디쯤에서 만나 밥을 먹는다 게장백반이나 소꼬리국밥이나 하다못해 자장면이라도 무얼 먹어도 아픈 저 점심상 넌 왜 날 버렸니? 내가 언제 널? 살아가는 게, 살아내는 게 상처였지, 별달리 상처될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떠나가볼까, 캐나다? 계곡? 나무집? 안데스의 단풍숲? 모든 관계는 비통하다, 지그시 목을 누르며 밥을 삼킨다 이제 나에게는 안 오지? 너한테는 잘 해줄 수가 없을 것 같아, 가까이할 수 없는 인간들끼리 가까이하는 일도 큰 죄야, 심지어 죄라구? 너는 다시 어딘가에서 넥타이를 반쯤 풀며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머리를 누르고 나는 어디, 부모 친척 없는 곳으로 가볼까? 그때, 넌 왜 내게 왔지? 너, 왜라고 물었니? C'est la vie, 이 나쁜 것들아! 나, 어디 도시의 그늘진 골목에 가서 비통하게 머리를 벽에 찧으며...... 다시 간다 ◆ 동그라미 / 허수경 저 상추밭 후드득 물 듣는 잎 아래 작은 달팽이 비 긋고 있네, 움츠러든 작은 몸 속에 든 적막, 후드득 물 듣는 소리, 누군가 달팽이에게 말을 좀 걸어주오, 빗장을 걸듯 말을 걸어, 달팽이를 어느 어수선한 집 안으로 들여보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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