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번은 없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 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 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였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 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 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2. 선택의 가능성.................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들을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류를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대의 전화 목소리를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세밀한 선으로 그린 오래된 그림을 좋아한다.
시를 쓰지 않을 때의 어리석음보다 시를 쓸 때의 어리석음을 더 좋아한다. 내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지만 사려 깊은 친절을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하는 나라를 더 좋아한다. 약간 주저하는 것을 좋아하고 질서 있는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좋아하고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 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개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얻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중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 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 1면보다 그림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이지 않은 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 서랍들을 좋아하고, 여기에 열거한 많은 것들보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영(0)을 더 좋아한다 기나 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들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가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이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모든 존재가 그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3. 여기...............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 지구에서는 모든 것이 꽤나 풍요로워 여기서 사람들은 의자와 슬픔을 제조하지 가위, 바이올린, 자상함, 트랜지스터, 댐, 농담, 찻잔 들을
어쩌면 다른 곳에서는 모든 게 더욱 풍족할 수도 있어 단지 어떤 사연에 의해 그림이 부족하고 브라운관과 피에로기*, 눈물을 닦는 손수건이 모자랄 뿐
여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장소와 그 주변 지역들이 있어 그중 어떤 곳은 네가 특별히 좋아해서 거기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위해(危害)로부터 그곳을 지켜내고 있는지도 몰라
어쩌면 다른 곳에도 여기와 비슷한 장소가 있지 않을까, 단지 거기서는 아무도 그곳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을 뿐
어쩌면 다른 어느 곳과도 달리, 혹은 거의 대부분의 여느 곳과는 달리 여기서는 네게 자신만의 토르소가 허용 되었는지도 몰라 필요한 부속품들을 정착한 채로, 네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 무리에 포함 시킬 수 있게 말이야 팔과 다리, 경탄을 금치 못하는 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무지(無知)는 과로로 뻗어버렸어, 끊임없이 뭔가를 계산하고, 비교하고, 측정하면서 결론과 근본적 원리를 추출해내느라
그래, 알고 있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기서 지속적인 건 아무 것도 없어 태고 적부터 지금까지 원소들의 지배 아래 있었으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봐 ㅡ원소들은 쉽게 지치거든,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걸 때까지 가끔은 한참 동안 쉬어야 해
그래, 알고 있어, 네가 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쟁, 전쟁, 전쟁 하지만 그 사이에는 늘 휴지기(休止期)가 있게 마련이지 주목! ㅡ 사람들은 약해 쉬어! ㅡ 사람들은 선해 주목하는 동안 황무지가 만들어지고, 쉬는 동안 피땀 흘려 집들이 지어져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에 재빨리 정착하지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예를 들어 넌 꿈을 꾸는 데 한 푼도 지불하지 않지 환상의 경우는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대가를 치르고. 육신을 소유하는 건 육신의 노화로 갚아나가고 있어
그것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한지 너는 표 값도 지불하지 않고, 행성의 회전목마를 탄 채 빙글빙글 돌고 있어 그리고 회전목마와 더불어 은하계의 눈보라에 무임승차를 해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기 지구에서는 그 무엇도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되지 않아
가까이 와서 이것 좀 보라고 탁자는 본래 있던 그 자리에 정확히 서 있어 책상 위에는 본래 있던 그대로 종이가 놓여 있고, 반쯤 열린 창으로 한 줌의 공기가 스며들어오지 벽에 무시무시한 틈바구니 따위는 없어 혹시 널 어디론가 날려버릴지도 모를 틈바구니 따위는 말이야 ㅡ유고시집 <충분하다>(문학과 지성,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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