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모음♠/♧ 시 모음

장석주 시 한밤중 부엌 외

modory 2016. 4. 14. 05:49

시집으로는 통산 열여섯 번째
올해 열한 번째 (다음 주에 또 하나의 책이 나와서 열두 번의 출판을 한단다)

다독가(多讀家)에 다 출판 (多 出版),  문장 노동자라는 말이 맞습니다. 
전에 없었던 출판기념 모임에서 한 분이 그의 어머니와의 만남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죽기 전까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그의 어머니의 기억을 떠 올리면
그가 지독하리만치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작년 봄에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무엇이 될지 모를 맏아들을 여기저기 아이들과 묶어서 과외공부를
시켰지만 나는 그런 틈에 끼일 형편도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찾고자 하는 심성을 심어준 그런 어머니가 있어서 아들이 외골수이면서도
타고난 천재성으로 문장을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장석주는 말합니다.
2007년 절벽을 끝으로 시집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 했는데 그 이후에도 이렇게 시집을 내어 놓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들어간 에너지를 생각하면 이제는 정말 더 이상의 시집은 없을 것이라고요.

하지만
시인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누구보다도 더 잘 드러낼 수 있으니
앞으로도 또 나오지 말란 법은 없을 것입니다.

시집 속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는 모습을 담은 시

▣ 한밤중 부엌 ▣

어머니 상 (喪) 치른 뒤
보름 지나고.

모란은 아직 일러 땅속에서 웃고 있는데.

가스 불은 끄고
형광등은 켜고

한밤중 널따란 부엌에
우두커니 앉은
웬 늙고 낯선 남자,

마두금(馬頭琴)이 없으니
삶은 계란을
세 개째 먹는 중이다.


■ 시작과 끝에 서 있는 자두나무

어디서 왔느냐, 자두나무야,
자두나무는 큰 눈을 인 채
붉은 자두 떨어진 방향으로 몸을 기울인다.
우리는 자두나무의 고향에 대해
알지 못한다.

붉은 것은 자두나무의 옛날,
자두나무가 서럽게 울 때
저 자두나무는 자두나무의 이후,
자두나무의 장엄이다.


▣ 난간 아래 사람   

 

난간에 서서 아래를 볼 때

당신은 난간 아래에서 운다.

 

거리엔 피 없는 자들이 활보하고

아아, 이럴 수는 없지!

당신은 연옥에서 깃발로 펄럭인다.

펄럭이는 것들은 울음,

손톱은 비통(悲痛)에서 돋은 신체다.

 

당신이 난간을 붙든 채 서 있고

나는 난간 아래 사람,

나는 머리칼을 짧게 자르고

당신은 나를 모른다.

 

우울은 슬픔의 저지대(低地帶)다.

 

푸른 벽에 못 박힌 달!

 

꿈길 밖에 길이 없어 바다 속으로

침수한다면,

물속에서 누가 울고 있습니까?


당신도 무섭습니까?

 


- 장석주의 시집 "일요일과 나쁜 날씨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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